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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날들 Sep 24. 2024

여행의 이유, 김영하

일상이 여행이 되기를

우리 인생에도 언제나 외면적인 목표들이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좋은 상대를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기, 번듯한 집 한 채를 소유하기, 자식을 잘 키워 좋은 대학에 보내기 같은 것들. 그런데 외면적 목표를 모두 달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능력보다 더 높이 희망하며 희망했던 것보다 못한 성취에도 어느 정도 만족하며 그 어떤 결과에도 결국 뭔가를 배우는 존재다.(p.23)

오랫동안 품어왔던 멋진 환상과 그와 일치하지 않는 현실, 여행의 경험이 일천한 이들은 마치 멀미를 하듯 혼란을 겪는다. 반면 경험이 풍부한 여행자들은 눈앞의 현실에 맞춰 즉각적으로 자신의 고정관념을 수정한다.(p.36)

비밀의 벽장을 열고 자기만의 세계로 내려가는 나니아처럼 그 역시 자신만이 열어젖힐 수 있는 문을 열고 오랫동안 중단했던 소설 속으로 매번 낯설지만 끝내는 그를 환대해 주는, 비자 따위는 요구하지 않는 그 나라로 바로 빨려 들어갔다.(p.51)

모든 인간에게는 살아가면서 가끔씩은 맛보지 않으면 안 되는 반복적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는다거나, 철저히 혼자가 된다거나, 죽음을 각오한 모험을 떠나야 한다거나, 진탕 술을 마셔야 된다거나 하는 것들. '약발'이 떨어지기 전에 이런 경험을 '복용'해야, 그래야 다시 그럭저럭 살아갈 수가 있다. 오래 내면화된 것들이라 하지 않고 살고 있으면 때로 못 견딜 것 같은 기분이 든다.(p.55)


여행은 언제나 우리를 들뜨게 한다. 우리가 이토록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일상으로부터의 해방 혹은 충전 그도 아니면 낯선 곳이 주는 설렘. 어떤 이유로든 우리는 때때로 혹은 자주 여행을 꿈꾼다.

내가 살아온 환경을 벗어나 잠시 내 이름마저 내려놓고 전혀 다른 세상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 그곳에서 나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과 정반대의 모습이 돼보고 싶을까 아니면 여전히 나의 취향, 나의 생각, 보편적인 내 모습 그대로를 다시 마주하게 될까?

누군가에게는 일상일지 모를 공간에서 나는 여행자로 머무르는 생경한 느낌. 우리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나에게로부터 한 발자국 멀어져서 결국 우리가 찾고 싶은 건 뭘까?

김영하 작가는 이 책에서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를 경험했다고 했다. 낯선 도시에서 타인이 건네는 호의에 대한 경험은 전적인 신뢰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러한 경험은 결국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기저에 있음을 깨닫게 했다고. 낯선 곳에서 만나는 타인의 호의라. 결국 여행이란 건 일상을 걷다 지친 내가 만나고 싶은 '좋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마주하는 모든 풍경, 낯선 사람들, 맛있는 음식과 설렘 혹은 안식을 통해 내가 나에게 건네주는 위로와 채워짐. 낯설고, 설레고 그래서 문득 두려울 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용기 있게 껴안고 한 걸음 더 성장한 나를 만나고 싶은 기대.

꼭 멀리 떨어진 다른 세상을 가지 않아도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여행이라 부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방구석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좋은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질 수 있다면 그래서 다시 일상을 살아갈 좋은 이유 하나를 얻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

언제나 일상 퇴근을 꿈꾸는 우리에게 좋은 마음을 만나는 일이 자주 있을 수 있기를. 여행이 일상이 되진 못하더라도 일상은 여행을 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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