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내가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란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 자기가 쓰는 힘의 근원을 알고 그 위에 자신만의 고유한 법칙을 쌓아 올리는 것을 꼭 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말한다. (p31)
힘든 밤을 지새우고 사랑에 외면당하고 선의를 짓밟히는 것. 젊은 시절 한 번쯤 이런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기에게 주어진 행운을 고집과 교만으로 인해 놓쳐버리고, 자존심에 상처 입으며, 가슴 아픈 말 한마디로 친구를 괴롭히고,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고, 고통을 줄 뿐인 아름답지 못한 몸짓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 이런 시간을 보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p.44)
누군가를 부드럽게 감싸주고 배려해 주는 것은 스스로 그런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사물을 바라볼 줄 알며, 정신적인 아픔을 이해하고 인간적인 취약점을 감싸 주는 것은 참담한 고요 속에서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p.49)
삶이 힘겨울 때에는 사람의 본성이 드러난다. 정신적 혹은 이상적인 것들에 대해 개인들이 저마다 맺고 있는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비롯 맛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외적인 삶을 익숙하게 뒷받침해 주던 것들이 사라지거나 파괴되었을 때 그것들은 비로소 진가를 드러낸다. (p54)
행복과 인생은 우리의 삶을 함께 지탱해 주는 것이며 우리의 삶의 전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을 잘 이겨 내는 방법을 아는 것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 것이라는 말과 같다.(p67)
인내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고행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힘든 일이면서 그와 동시에 유일하게 배울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이 세상의 자연과 성장, 평화, 번영, 아름다움은 모두 인내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인내는 시간과 침묵, 그리고 신뢰를 필요로 한다. (p.188)
세계가 너무나 부패하고 위태로워 보여서 그로 이해 인류에 대한 믿음과 협력에 대한 의욕을 상실해 버릴 지경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의기소침해진 상태에서 나는 쓸모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계속해 나가려는 완고함과 고집스러움을 또다시 얻는다. (p.299)
헤르만 헤세가 힘든 시절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는 신학교를 다니다 중퇴 후 탑시계 공장 수습생, 서점 직원으로 일을 하며 틈나는 대로 습작을 하게 된다. 그러다 '에밀 싱클레어'라는 익명으로 <데미안>을 발표했고 이후 화가로서의 역량도 펼치며 수많은 문학 작품들을 펴냈다. 이 책은 헤르만 헤세가 직접 그린 그림들과 함께 짧은 시와 글들이 담겨있다. 처음 헤르만 헤세를 알게 된 건 <수레바퀴 아래서>였는데 억압적이고 갑갑한 환경에 갇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수레바퀴 아래에서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마치 청소년 시절 공부에 갇혀버린 우리들의 이야기 같았다. 실제로 헤르만 헤세도 청소년 시절을 방황으로 보냈으며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다 자살 기도를 하고 신경과 병원에 입원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후 깊고 어둡던 방황을 이겨내고 내면세계에 있는 생각들을 문학 작품으로 완성해 냈다. <데미안>은 그의 청소년 시절 불안과 좌절에 대해 잘 담아내고 있으며 유명한 글귀인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오래도록 깊은 깨달음을 주는 명언으로 남았다.
<삶을 견디는 기쁨>은 헤르만 헤세의 회고록 같은 책이다. 인생에 대한 그의 오랜 사색이 담겨 있으며, 삶에 해탈한 경지에 이른 것 같은 그의 고찰을 읽다 보면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사람을 단단하고 또 유연하게 만드는지 절감하게 된다. 조바심을 경계하며 우리가 하루에 누릴 수 있는 작은 기쁨들을 잃지 않는 것,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경청하며, 아무 조건 없이도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진정한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삶이야 말로 우리 모두가 동경하는 인생이 아닐까. 삶에서 때때로 찾아오는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고 무의미하다 느끼는 것들에 맞서는 삶. 헤르만 헤세가 말하고 싶었던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이 묵직한 울림으로 읽히는 책이다.
인생은 덧없고, 잔인하고, 어리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하다.
(헤르만 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