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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우 Feb 22. 2024

온통 '총선' 뉴스뿐인 요즘, 왜 지방의회인가?

[이일우의 아무튼 지방의회] 1화 연재를 시작하며

[이일우의 아무튼 지방의회]는 필자가 8년간 기초의회와 광역의회의 임기제 전문위원으로 겪은 소소하지만 특별한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이곳에는 필자의 <나는 지방의회에서 일한다>(이일우, 에이원북스, 2022)」를 수정·보완하여 지방의회의 이모저모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말]


"처음 뵙겠습니다. 도봉구의회 전문위원 이일우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제가 도봉구청장님을 잘 아는데……"


"아, 네."


구의회 전문위원 시절 정책토론회나 간담회와 같은 외부행사에서 교수, 변호사, 연구위원, 정치인 등을 만나면 흔히 겪었던 상황이다. 명함을 주고받으며 내 직장을 말하는 순간 상대방은 구청장과의 친분을 말하기 일쑤였다. 처음 들었을 때는 내가 일하는 구의 청장을 잘 안다고 하니 반가웠다. 서울시에 구청장이 25명이나 있는데 어떻게 아는 사이일까 마냥 신기했다.


어느 날인가 그런 인사를 또 받으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의회 의장을 잘 안다고 하는 인사는 가물에 콩 나듯 했기 때문이다. 내가 만일 국회사무처에 근무한다고 했다면 상대가 대통령을 잘 안다고 말했을까? 내가 서울시의회 전문위원이라고 소개했다면 과연 나한테 시장을 잘 안다고 말했을까? 그만큼 기초의회인 구의회가 국회나 광역의회에 비하면 독립적인 기관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사실 '◯◯구, ◯◯군, ◯◯시'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구청장, 군수, 시장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서울시라는 말을 들으면 서울시의회 의장보다 서울시장을 먼저 연상하듯 말이다. 솔직히 구의회로 이직하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다.


'국회, 광역의회, 기초의회'는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나는 지방의회가 좋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차근차근 나눌 예정이다. 내 경험으로는 인력과 예산 규모, 권한 등의 측면에서 볼 때, 국회를 대형백화점에, 서울시의회나 경기도의회 같은 광역의회는 대형마트로, 서대문구의회나 도봉구의회 같은 기초의회는 동네에 있는 편의점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이즈가 작다고 기초의회를 폄하하자는 뜻이 결코 아니다. 편의점에도 있을 건 다 있다. 명품을 판매하는 백화점이나 대규모 할인세일을 하는 대형마트 못지않게 오히려 주민들에게는 동네 이곳저곳에 있는 편의점이 유용하다. 치약과 칫솔을 사러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까지 가지는 않으니까.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다양해지고 질이 좋아지며 서비스까지 향상된다면 당연히 환영할 일이 아닌가?


그런데 구의회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이 동네 편의점보다 못한 것 같아 씁쓸할 때가 많다. 조금만 따져 보면 구청과 구의회의 주요 업무가 바로 생활밀착형 행정서비스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조금 과장하자면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보다 어쩌면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지방선거가 주민들에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편의점이 아무렇게나 난립하거나 기본적인 역할을 소홀히 하면 불편을 겪는 건 바로 그 지역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지방의원의 이름조차 모르는 주민이 많을수록 기초의회 폐지나 무용론(無用論)은 더욱 힘을 받을 수밖에 없고 언론은 지방의회를 동네북처럼 계속 두들겨 대기만 할지도 모른다.


기초의회, 주민한테 참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

▲ <나는 지방의회에서 일한다> ⓒ 에이원북스


지방의회에 대한 주민들의 무관심은 곧 지방의원의 의정활동 태도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2024년 1월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92개 지방의회를 대상으로 종합청렴도를 평가한 결과, 총점 68.5점으로 행정기관·공직유관단체에 비해 현저히 낮았고 의정활동 과정에서는 지방자치단체 공직자와 산하기관 임직원 등 100명 중 15명이 부패·갑질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방의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별개로 그동안 구의회 전문위원인 내 면전에서 노골적으로 기초의회 폐지를 주장하는 집행기관의 공무원들을 많이 만났다. 심지어 일부 초선 구의원은 지방의회가 뭐 하는 곳인지 별 관심도 없고 구의회 폐지론에 맞장구를 쳤다. 어쩌다(?) 공천을 받고 당선된 구의원이니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나는 안타깝다 못해 오기가 치밀었다.


'이건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주민의 대표기관인데……. 기초의원의 원내 의정활동을 보완해 줄 방법이 없을까…….'


주민 눈높이에서는 누가 봐도 함량 미달(?)인 지방의원에 대한 주요 정당의 허술한 공천과정과 지방의원 교육 현실에 분노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얼른 눈에 띄지 않을 뿐 의미 있는 의정활동 성과가 많은데도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으로 전락한 기초의원을 나는 점차 연민으로 바라보게 됐다. 모 식품회사 광고 문구처럼 '기초의회, 주민한테 참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 같은 심정이랄까.


한 사람의 국회의원이 의정활동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보좌진의 노력이 필요하듯이 지방의원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어떻게 보좌하느냐에 따라 지방의원의 원내 의정활동 성과가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경우를 지방의회 내부자로서 수없이 목격했다. 현행 지방의원 공천과정과 공직선거제도의 문제는 차치하고, 지방의원 특히 기초의원의 전문성을 탓하기 전에 내가 기초의원을 보좌하는 의회사무국(과) 인력의 질과 양을 살펴보라고 강조하는 이유이다.


기초의회 전문위원으로 일하는 동안 나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방의회의 존재 이유와 실제 현실은 얼마나 일치할까? 주민들은 일상생활 중에 지방의회를 언제, 어떻게 체감할까? 일각의 주장처럼 주민들은 기초의회를 폐지해도 된다고 느낄까? 다른 선진국의 지방의회는 우리나라 지방의회와 뭐가 다를까? 대체로 지역행사나 지역구 민원처리에 급급해 안건심사와 같은 원내 의정활동에 소홀하기 일쑤인 기초의원은 일 년 내내 무슨 일을 할까? 지방의원은 원내 의정활동을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흔히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은 지방자치를 견인하는 두 개의 수레바퀴라고 하는데 과연 사실일까? 질적·양적으로 의회사무기구의 정책지원인력은 지자체장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열악한데 이 구조는 왜 개선되지 않을까?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집행기관 공무원한테 좋은 것 말고 진짜로 주민에게 '좋은 지방의원'과 '좋은 전문위원'이란 무엇일까?"


지방의회를 둘러싸고 부정적 질문만 있는 게 아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좋은 지방의회를 만들기 위해 밤잠을 설치는 의회사무기구 직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힘쓰는 다수의 지방의원, 집행기관의 공무원 또한 없진 않다. 이들의 노고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제안하고 시행한 각종 사업과 정책은 주민들의 고단한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준다. 이런 맥락에서 "대한민국에서 좋은 지방의회는 어떤 것이며, 좋은 지방의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하고,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가"도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이다.


짐작하건대 반드시 제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도대체 대한민국의 지방의회는 누가 주도하는가, 특히 기초의회 의사결정 과정에서 누가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가?"일 것이다. 이는 학계, 연구기관 등에서도 거의 다루지 않는 물음이다. 2018년 7월 기준 전국적으로 시·군·구와 같은 기초의회가 226곳이고 기초의원 정수만 해도 2927명이나 되는데 말이다.


진짜로 주민에게 필요한 지방의회를 위해


사실 이런 질문은 지방의회를 둘러싼 민낯을 드러내는 일이다.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장·차관, 특별·광역시장, 시장·군수·구청장, 광역·기초의원까지 선출직의 수직적 위계가 분명한 낡은 고정관념과 우리나라 지방의회 관계자들의 실상을 드러내는 것일지 모른다. '진짜로 주민에게 필요한 지방의회'는 이 낡은 것들을 철저히 인식하고 과감하게 드러내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연재의 제목으로 사용한 '소소한 생각'은 너무 무겁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지방의회 내부자로서 겪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바람에서 지었다. 지방의회의 질을 높일 대안을 놓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취지이다. 간혹 질문은 하면서 답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아예 질문과 답이 모두 잘못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다소 거칠 수 있는 이 연재에 많은 이들의 격려와 조언이 함께 하길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한국자치발전연구원이 발행하는 월간 <자치발전>과 오마이뉴스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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