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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다올 Jun 14. 2023

내 찌질함을 인정할 수 있을까?

저는 노력 중입니다.

얼마 전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자신의 일을 해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만의 답을 주기 위해 잠깐 시간을 달라고 청했다. 짧은 시간 고민한 끝에 이렇게 답했다. "이렇다 할 비결은 없는 것 같은데... 굳이 꼽아본다면 딱 하나인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얼마나 약하고 찌질한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답게 일한다는 것> 최명화, 인풀루엔셜



일에 관해서는 유독 일희일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다.

일이 나를 증명한다고 생각했고 일과 나를 구별하지 못했다.

일이 많이 들어오면 내가 사회에 증명이 됐다고 생각했고 일이 없으면 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나운서 재직 시절 아나운서실 대선배가 나를 불러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올아, 너 오늘 방송 진짜 좋았다. 요즘 모니터링 자주 하더니 좀 늘었네"

순간 광대가 승천했고 선배는 기가 막히게 그 모습을 포착했다.

"한 번 잘했다고 칭찬받았다고 해서 일희일비하지 마라. 방송계에서 일희일비하는 것만큼 사람 피곤해지는 게 없어"라고 말하고 가셨다.



그 후에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수도 없이 많이 또한 자주 경험했지만 내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나보다 잘하거나 나보다 예쁜 진행자는 차고 넘쳤다.

그때마다 나는 흔들렸다.

숫자를 앞다투는 홈쇼핑에서 방송을 할 때 마음은 더 심해졌다.

매출이 잘 나오면 우쭐해지고

매출이 폭망 하면 참담해지는 업 앤 다운의 시간이 힘들어졌다.



<나답게 일한다는 것>이라는 책에서는 스스로가 얼마나 약한 사람인지 깨닫고 나니 그 감정이 치유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찌질함을 인정하고 강해야 하는 강박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

잘 되고 안 되기를 반복하면서 부단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라고 말해준다.



나는 너무나도 약한 사람이고

내 분야에서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사람이었다.

스스로가 가끔 대견하고 좋지만 진짜 사랑을 해 줄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아 보였다.

보이기 싫은 모습, 약한 모습, 형편없는 모습의 나는 똑바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몇 해전

한 여성분과 함께 더블 MC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처음 만났지만 이 좁은 바닥에서 우리는 이미 서로를 알고 있었고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그녀는 겸손한 태도를 시종일관 잃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던 그녀의 모습은 당당함 그 자체였는데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며 나를 높이는 그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다.

같은 업계라고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생각하고 넘어갔다.


잠시 후 우리는 리허설을 했고 나는 그 불편함의 근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나처럼 스스로가 무대 중앙에 서서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사람이었다.

원래 자신의 약점이나 단점을 가진 사람의 행동을 보면 그걸 더 기가 막히게 캐치를 하고 싫어한다는데 나는 전형적인 그런 부류였다.

다른 사람들의 싫은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나 단점이 보였다.

역시나 그날 그녀의 모습에서 내 약점을 봤다.

 

그녀의 귀에 내 멘트가 좋았던 모양인지

리허설에서 했던 내 멘트를 현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가로채갔다.

사람들 앞에서 (적어도 다올씨 보다는) 잘해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온 뒤틀린 행동.

내가 고민해서 넣어둔 애드리브 두 개째 눈앞에서 뺏겼을 때 "미친 거 아냐?"라는 생각이 절로 튀어 나왔다.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하는 진행이었기 때문에 재빠르게 다른 애드리브를 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그 일이 있고 한 달 정도 후였을 것이다.

나는 인스타그램에

일을 한 후에 셀프칭찬을 하는 게 지겹다는 식의 글을 올렸다.  

(우리는 심지어 서로를 팔로우 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그게 왜 그녀에게 가서 꽂혔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를 차단한 뒤 내 지인에게

"다올씨가 내 험담을 인스타에 올렸다"라고 말하며

울먹거렸다고 한다.

나는 그녀와의 행사, 그녀와의 에피소드는 아예 올리지도 않았고 사람들한테 언급하지도 않았다.



나는 여전히 그녀가 궁금하다.

인스타 속의 그녀는 스스로가 너무 빛나고 똑똑하고 외국어도 잘하고 목소리도 좋고 심지어 진행까지 잘하는 사람이라 자신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워 죽겠으면서...그때 저한테는 왜 그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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