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사업팀에서 시작한 치킨

은퇴 후 치킨집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by 설탕우유

지난 회사를 다닐 때도 난 지원사업으로 회사가 받은 지원금에서 최저 수준에 해당하는 월급을 받았었는데 이번 회사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중소기업 지원을 통해 받은 지원금이 나의 월급에 해당했고 다만 서류상의 내 업무와 실제로 했던 업무가 달랐기 때문에 글을 적어 내려가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 역시 진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1. 다시 돌아간 취준생의 시간


지난 회사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던 자신감을 모두 잃고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오자 처음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보다 취업의 현실이 더 어렵게 느껴지고 있었다. 패기 있게 자신감 있게 부딪혀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내가 부딪혔던 사회초년생의 현실은 너무 단단하고 차갑게만 느껴졌다. 유일한 나의 무기였던 자신감은 현실에서 무딘검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내 취준 생활에 큰 도움을 줬던 선배 형이 친하다는 스타트업 회사를 소개해줬는데 지역에서 예산을 받아 큰 행사를 진행하고 공간대여 사업을 하는 성격의 회사였다. 내가 면접을 보고 왔던 당시에는 곧 자리가 생겨서 알려주겠다고 말했지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르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불합격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회사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락이 오래 걸렸는데 아직 다른 곳에 취업하신 것이 아니면 한번 회사로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얼떨떨한 마음인 상태로 회사로 찾아갔다. 어쩌면 이번에는 더 잘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도 분명히 했었다. 하지만 회사에 도착해서 제안받은 일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2. 신사업팀


당시 회사는 지역의 공간 사업을 진행하는 파트와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파트로 나뉘어 있었는데, 회사에 들어오고 보니 회사에 본래 구조가 행사의 기획과 대행업무를 하다 공간 사업에 선정되어 회사의 규모가 커져있던 상태였다. 대표는 거기서 더 욕심을 내 하나의 자회사를 더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온 것이 신사업팀이었다.


당시 신사업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표의 안몫은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7년 전 로봇 팔을 이용한 무인 치킨 프랜차이즈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다만 그 무인화 기기와 로봇팔이 어떤 메커니즘을 갖고 움직여야 하는지 그 로직을 짜는 일은 사람이 해야 했기에 먼저 치킨집을 차려둔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서 일단 치킨집에서 일을 배워서 나중에 그 로직을 함께 짜는 일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신사업팀이라는 이름을 달고 치킨집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표는 늘 '치킨집이 아닌 신사업팀'이라고 불렀지만 일을 할수록 사실상 치킨집을 운영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치킨집에 똑같은 상호를 두 개로 늘리기도 하고 가정용 족발 재료를 받아 가게에서 삶아 판매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신사업팀이라는 이름은 처음에만 거창하게 불릴 뿐이었던 것 같다.


araf60plus-chicken-wings-7576679_1920.jpg 이때 치킨을 배워서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픽사베이


3. 나의 두 상사들


처음에 가게는 세 명이 운영하고 있었다. 대표의 부인이 실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가게에서 자잘한 일들을 보고 있었고, 내 위에 팀장은 큼직큼직한 일을 맡고 있었는데 치킨을 염지하고 튀기는 전반적인 업무를 같이 보고 있었다. 다만 내가 처음에 둘을 만났을 때부터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실장은 팀장이 하는 일을 못 미더워했고 팀장은 실장이 지나치게 까다롭다고 불평했다.


시간이 지나 자리를 잡게 되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양쪽에서 차례대로 듣게 된 나는 이 가게에서 두 사람이 큰 실책들을 한 차례식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실장은 처음에 오픈을 하자마자 가게가 너무 잘되자 한 달이 지나고 행사기간이 끝났다며 가게의 치킨값을 천 원씩 올려버렸다. 이 사실에 손님들은 조용히 빠져나갔고 가게는 주문이 뚝 끊기게 되었다.


반면 팀장은 일을 세심하게 하는 능력이 부족했는데 영수증처리나 거래처와의 업무 처리를 미루거나 잘못하다 보니 가게에 초반에 큰 손해를 끼치고 말았던 상태였다. 결국 실장은 계속 팀장을 회사에서 내보내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었고 반면 팀장은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도 대표에게 실장의 실책들을 이야기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되어 있었다. 가게가 자리를 잡고 대표는 결국 팀장의 손을 들어 실장을 가게에서 나오게 했다.


실장은 나가는 날에도 내게 "설탕씨 팀장이 꼼꼼하지 않으니 가게를 잘 부탁해요." 하며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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