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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ime Aug 22. 2023

미덕에는 지적 미덕과 도덕적 미덕이 있다.

행복은 완전한 미덕에 따른 혼의 활동이므로,

우리는 미덕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행복을 더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정치가는 무엇보다도 미덕 연구에 힘을 쏟아 왔다고 보인다.

그런 정치가는 동료 시민을 법을 잘 지키는 좋은 시민으로 만들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미덕 연구가 정치학에 속한다면,

이는 우리의 처음 계획과 부합한다.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미덕은 인간의 미덕이다.

우리가 찾는 좋음도 인간에게 좋음이고,

우리가 찾는 행복도 인간의 행복이기 때문인다.


우리가 말하는 인간의 미덕은 신체의 미덕이 아니라 혼의 미덕이다.


또한, 우리는 행복을 혼의 활동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정치가는 혼에 관한 것을 어느정도 알아야 한다.


혼중에서 본질적으로 이성을 지니지 않지만,

모종의 방식으로 이성에 참여하는 또 다른 부분이 있는 듯하다.


우리는 자제력이 있거나 없는 사람의 이성을 칭찬하고,

그들의 혼에서 이성을 지닌 부분을 칭찬한다.

우리가 칭찬하는 그 부분이 그들에게 가장 좋은 쪽으로 올바르게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속에는 이성 외에 이성과 맞서 싸우고 저항하는 또 다른 본성도 있는것 같다.

몸의 마비된 부분을 오른쪽으로 움직이려고 하면,

실제로 그 부분은 정반대인 왼쪽으로 움직이듯이.


혼도 마찬가지다.


자제력 없는 사람들의 충동은 이성과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몸은 그렇게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보이지만,

혼에서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몸 안에서 처럼,

혼 안에도 이성 외에 이성에 반대하고 저항하며 싸우는 뭔가가 존재하는 것은 틀림없다.


자제력 있는 사람에게는 이 부분은 이성에 복종하고,

절제와 용기가 있는 사람은 이 부분이 이성의 말을 훨씬 잘 따른다.

그런 사람에게 이 부분은 모든 일에서 이성과 한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혼중에서 이성을 지니지 않는 요소는 두 부분인 듯하다.

영양 섭취와 같은 식물적인 부분은 이성에 전혀 참여하지 않지만,

욕구나 욕망의 일반적인 부분은 이성에 귀 기울이고 복종한다는 점에서,

모종의 방식으로 이성에 참여한다.


여기서 이성이란 우리가 아버지나 친구들의 이성적인 말을 수긍해서 받아들인 다는 의미이고,

수학적인 추론에서 사용되는 그런 말이 아니다.


혼에서 이성을 지니고 있지 않지만 이성에 참여하는 부분을 이성적이라고 한다면,

혼에서 이성을 지닌 부분은 둘로 구분된다.


그중 하나는 그 자체 속에 이성을 지닌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말에 복종하듯 이성에 복종하는 부분이다.


미덕도 혼의 이러한 구분에 따라 여러 종류로 구분된다.

즉 철학적 지혜, 명석함, 실천적 지혜 같은 미덕들은 지적 미덕이고,

후히 베푸는것, 절제 같은 미덕들은 도덕적 미덕이다.


우리는 한 사람의 도덕적 성품에 관해 말할때는,

그 사람이 지혜롭다거나 명석 하다는 말 대신,

그 사람이 온화하고 절제 있다고 말하고,

그런 성품을 칭찬한다.


미덕이란 칭찬 받을 만한 혼의 상태를 의미하므로,

우리는 그러한 상태에서 나오는 지혜를 지닌 지혜로운 사람을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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