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받은 용돈
누나가 둘 있다. 두 살 터울이다 작은누나는 나와 두 살 차이 나고 큰누나는 나와 네 살 차이 난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했었다. 친구랑 싸워서 내가 이겼는데 그 친구가 형을 불러와서 결국은 내가 이긴 게 아닌 것으로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드는 생각이었다. 공교롭게도 옆집, 앞집에는 나와 동갑내기 친구들이었고 내가 다 이겼는데 그 친구들은 다들 형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형이 있는 친구들은 매번 형이랑 싸운 얘길 들려주곤 했는데 하도 많이 들으니 그 이후로는 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어릴 때 생각해 보면 누나가 있어서 좋았던 점은 거의 생각이 나질 않는다. 맨날 나만 부려먹고 그랬던 게 더 생각이 난다. 그리고 누나한테 맞았던 일들 등등. 아빠는 특히나 나를 이뻐했던 것 같은 기억이 있는데 가물 가물 하다. 집안에 아들 하나 있으면 뭔가 자랑거리가 있어야 밖에서 아들 자랑을 하는데 그런 것들이 없어서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자랑거리가 있는 아들이었어야 했는데.
엄마는 확실했다. 부모가 없으면 큰누나가 부모니까 말 잘 들어야 한다고 항상 얘기했었다. 그래서 집안에서의 서열은 확실하게 큰누나, 작은누나, 나 이렇게 당연히 정해졌다. 누나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난 집에 있으니 뭔가 먹을 것을 만들면 엄마는 누나들 올 때까지 못 먹게 했다. 누나가 오면 항상 누나 먼저 먹고 난 다음에 내가 먹는 그런 식이었다. 그리고 내가 뭔가 잘못을 해서 엄마한테 혼나고 나면 그다음에 엄마는 동생의 잘못은 누나도 책임이 있다고 큰누나를 혼냈다. 그러고 나서 난 또 큰누나한테 혼났다. 매번 억울하긴 했지만 워낙 그렇게 자라서 당연하게 생각됐다. 하지만 큰누나가 잘못해서 혼날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럼 나는 괜찮아야 되는데 엄마는 과거의 잘못을 끌고 와서 나를 또 혼낼 때가 있어서 너무나도 억울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아직까지 분한 게 몇 가지 있긴 하다. 아무튼 이렇게 엄마는 맛있는 게 있으면 누나먼저 챙기고 잘못한 게 있으면 나를 먼저 찾는, 아무튼 그랬다.
내 친구들을 보면 특히 외아들일 경우, 게다가 막내일 경우에는 사랑을 독차지하고 맛있는 걸 먼저 먹으며 심지어 잘못해도 혼나지 않고 누나들을 대신 혼내는 그런 상황들을 많이 봤는데 나는 언제나 반대여서 언젠가 얘기 들었던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그 얘기가 진짜라고 생각하고 지낸 시기가 있었다.
아직도 또렷하게 생각나는 건, 초등학교시절 학교 끝났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흠뻑 젖어서 집에 갔는데 엄마가 빨리 우산 가지고 누나들 가져다주라고 한 일이 생각난다. 우산 두 개 챙겨 얼른 다시 학교로 뛰어가서 누나들을 기다렸었다. 난 이미 비를 맞아서 첨벙 거리면 갔었던 기억이 있다.
난 작은누나를 이용한 적이 있다. 밖에서 늦게까지 놀면 엄마한테 혼나는데 누나랑 같이 있으면 안 혼나는 경우가 있어서 놀다가 해가 떨어지면 집 앞에서 몰래 작은누나를 불러냈다. 그리곤 같이 들어가서 작은누나랑 놀았다고 엄마한테 얘기했다. 그러면 안 혼나고 자연스럽게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계속 집에 있었던 작은누나가 갑자기 밖에서 놀다 들어왔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가 통했던 건 엄마가 나를 혼내는 것도 지쳐서 그랬을 것이다. 나를 혼내면 차례대로 또 큰누나한테도 뭐라고 해야 하니 말이다.
큰누나가 결혼을 한다고 했다. 당시 집이 상당히 어려워서 다 같이 끌고 갔던 때였다.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큰누나는 이미 사회생활을 하고 있어서 집안에 아주 많은 보탬이 되고 있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텐데 표현을 하진 않았지만 짐작은 갔다. 난 누나가 어서 빨리 이 집을 탈출하는 게 여러 모로 누나의 인생에 나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한다고 하기 전부터 빨리 결혼하라고 했었다.
월급을 받으면 이것저것 다 빼고 오만 원 정도 남았다. 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던 시절에 완전히 거지 같은 생활이었다. 그러다 월급이 올랐는데 다 빼고 십오만 원 정도 남게 됐다. 누나가 결혼을 한다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했다. 여자는 혼수를 해가니 내가 그 걸 도와주면 되겠다 싶어 아이보리색 가죽 소파랑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던 32인치 평면브라운관 TV를 결혼 선물로 사줬다. 내 수준에는 엄청난 지출이었지만 상당히 뿌듯했다. 그렇게 누나가 결혼을 했고 난 누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결혼했으니까 앞으로는 우리 집안일에 대해서 신경 쓰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누나는 확실한 사람이다. 동생이 그렇게 말하니까 그대로 했다. 내가 이 말을 한 게 후회되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시집갔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을 안 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고정지출이 있으니 그나마 있던 돈을 까먹고 있을 수밖에 없다. 나야 안 먹고 안 쓰면 되는데 엄마한테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지내다 엄마가 아팠던 일이 생겼고, 틀니도 갈아야 하고 임플란트도 해야 하는 일들이 생겼다. 살면서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안 좋은 일이 안 생기길 바라야지.
큰누나한테 전화가 왔었다.
“Rey야, 너 돈 안필요하냐?”
“누나는 돈 안필요해?”
“나? 필요하지”
“돈이 안필요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은데”
“그렇긴 하지”
“그런데 갑자기 그런 얘기는 왜 하는 거야?”
“그냥, 너 요즘 놀고 있는데 돈 들어갈 일이 많을 텐데 그래서 조금이라도 주고 싶어서”
“아, 됐어. 내가 필요하면 얘기할게”
“아니야, 그냥 좀 보낼 테니까 이걸로 네가 하고 싶은 거 조금이라도 해”
“나 하고 싶은 거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괜찮아”
“그래도, 내가 안 괜찮으니까 너 필요하면 꼭 얘기해”
“알았어”
그렇게 전화를 끊고, 몇 개월이 지났을까. 누나한테 다시 얘기했다.
“나, 돈 줘”
“으이그, 준다고 할 때 받지, 알았어”
하고 용돈을 받았다.
이 돈은 어디에다가 써야 할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생활비로 쓰였다.
얼마 전에는 작은누나한테 메시지가 왔었다.
“Rey야, 누나가 돈을 좀 붙여주려고, 계속 주고 싶었는데.. 이제야 주게 되네. 계좌번호 이거 맞지? 이건 그냥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니까 너 쓰고 싶은 거 써. 그동안 엄마 모시고,, 암튼.. 고마워서.. 많지는 않아.. 건강 잘 챙기고 나중에 보자”
이렇게 메시지가 왔고 통장을 보니 돈이 들어와 있었다.
“암튼 보냈어. 이걸로 다른 거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일부라도 해. 너 위해서 써 알겠지?”
생각지도 못했던 누나들의 용돈이 도착했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누나들은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모았는데 얇은 자로 구멍을 벌려 동전을 빼내서 과자 사 먹었던 일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아주 조금 미안해졌다.
나를 위해 쓰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통장에 들어가면 돈이 섞이는데 다른 통장으로 옮겨놔야 할까 잠깐 생각하다 말았다. 어차피 용돈 받은 만큼만 생각하고 있으면 될 테니 말이다.
나를 위해 쓰라는 말이 며칠 동안 맴돌아서 엑셀을 열어 표를 만들었다. 엑셀표의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누나들 협찬 금액 사용내역 : 오로지 나만을 위해 쓸 것”
이렇게 하고 간단하게 항목과 수식을 넣어 표를 만들었다. 날짜, 분류, 아이템, 사유, 비용 이런 정도다. 표를 만들었으니 나만을 위해 쓰겠다고 생각하고 몇 칸을 채워나갔다. 그렇게 칸을 채우고 보니 통장에 찍혀있는 숫자보다 훨씬 더 크게 보였고 뭐든 할 수 있는 정도의 금액 같았다. 똑같은 돈이라도 이름표를 달아 놓으니 더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이 표는 몇 칸 채우는 걸로 종료됐다.
엄마 치아가 말썽이라 치과를 다닌 지 석 달이 넘었고 이제야 치료가 끝나게 됐다. 그렇게 나만을 위해 쓰겠다고 했던 누나들의 용돈은 마무리되었다.
다 커서 받은 용돈이라 그런지 재밌는 생각이 들었고 딱 돈 들어갈 일이 있을 때 그 돈이 들어와서 제때 쓰이게 되는 걸 보니 신기했다. 모든 것에 가치를 더하면 영혼이 깃드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용돈의 아쉬움을 상쇄시킬 수 있을 만한 일이 하나 생겼는데 우리 동네에 저렴하고 치킨이 너무 맛있고 맥주가 엄청 시원한 치킨집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자주가게 될 것 같다. 누나들 협찬 금액의 몇 개 안 되는 사용 내역 중 하나가 이 치킨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