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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로 Sep 11. 2023

이카로스

습작 1

교수님, 박제가 되어버린 학생을 아십니까?     


수업 중에 교수님은 “좋아하는 걸 하면 돈을 주지 않는다. 잘하는 걸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면서 본인이 잘하는 것을 해야 잡마켓에서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요.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하는 사람은 운이 좋을 뿐이라는 것이죠. 반면, 다른 교수님은 근시안적으로 보지 말고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게 맞다고 하셨죠. 두 분의 말씀은 모순되지만, 핵심을 향하고 있습니다. 맹자와 순자가 인간 본성에 대해 탐구한 것이 반대인 것처럼요,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재 소리 들으며 자라, 공부에 있어서 제가 으뜸인 줄 알았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늘 수석 자리를 꿰찼기에, S대 진학은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전국에는 2,000개 남짓의 학교가 있고, 각 학교마다 전교 1등이 있으니, 저는 기껏해야 2,000등인 것입니다. 그걸 몰랐던 아해는 결코 다가갈 수 없는⸺제논의 아킬레우스와 같은⸺운명을 걷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적에 맞춰 들어온 이 공간은 저에게 악몽과도 같습니다. 밤마다 나타나 잠 못 들게 하고, 온몸을 병들게 합니다. 머리는 새하얘지고, 원인 모르는 편두통이 머리를 끊임없이 두드립니다. 세상의 온갖 명예, 부, 쾌락을 누릴 수 있다는 제안을 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고통만 남긴 채 사라져 버렸습니다.      


좋아하는 일은 없고, 오직 공부만 바라보며 경주마처럼 달려왔습니다. 그렇게 해온 노력마저 현실에서는 변변찮은, 평범한 능력일 뿐입니다. 하지만 제가 붙잡을 수 있는 건 이 비루한 공부뿐이기에, 끝없는 윤회만을 반복합니다. 하찮은 능력이니, 금방 이룰 줄 알았던 목표도 몇 년간 이루지 못한 거겠죠. 제가 그동안 준비한 것들은 세월과 함께 흩어져 버렸습니다.      


교수님, 전 불나방이고, 도박중독자이고, 이카로스입니다. 아, 태양에 가까이 갔다가 밀랍 날개가 녹아서 죽은 이카로스는 오히려 황홀했을지도 모릅니다. 산소가 줄어들며 의식이 점점 흐려지는 뇌에서 나오는 호르몬들은 얼마나 강렬한 쾌감을 주었을까요.    

  

제게 날개가 다시 돋는다면     


날고, 날고, 날고. 한 번만 더 날아보겠습니다.     


한 번만 더 날아보겠습니다.     


그러니 재수강만은 면하게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End 1


“그래서 이게 뭐라고?”

“Y 학생이 중간고사 시험 볼 때 답안지에 적어놓고 간 답안지예요. 교수님께 꼭 전해달라고 부탁하면서요.”

“글 쓸 거면 국문과나 가지 무슨 경제학과를 와서..” A 교수는 재활용지가 모여있는 더미에 답안지를 던졌다.

“하하하.. ” 대학원생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내린 채 바닥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요즘 애들 참 이상해. 아까도 말이야, 한 학생과 면담을 했는데, 성적 관련해서 억지를 부리더라고, 이건 뭐 고등학교 담임도 아니고. 내 대학생 때는..”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A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듣던 대학원생은 저녁 식사 메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End 2


"대표님도 그렇게 힘든 시절이 있으시다고요?"

"그럼요. 저도 젊었을 때는 이리저리 방황하며 살았는걸요. 전공도 맞지 않고, 공부도 잘 안되고."

"정말 상상도 안 되네요. 그러면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시겠어요?"

"아 네. 먼저, 열심히 살라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꾹 참고 버티면 광명이 오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서울에 있는 7평 남짓한 한 방에서는 

취업 관련 카페 접속 기록이 남아있는 노트북, 

침대에 어지러이 널브러진 세줄 트레이닝복 세트, 

책상 옆에 놓인 각종 쓰레기와 이력서, 

냉장고에 있는 맥주캔과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 

싱크대 앞에는 무수히 많은 라면 봉지와 빈 생수병,

자격증 시험 책으로 가득한 책상 한편에는 힐링 에세이가 꽂혀있고,

Y의 휴대폰에서는 사업에 성공한 기업 대표가 인터뷰한 내용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침묵이 짙게 깔린 무향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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