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에게는 가혹한 방학 중 보충 학습 -
"선생님, 공부 못 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어느 날, 가을이가 제 교실에 오자마자 책을 던지며 물었습니다. 가을이 엄마는 가을이에게 '공부 못 하는 죄'로 방학 동안에 학교에 나가서 보충학습을 해야 한다고 윽박질렀답니다. 기초학력 부진아로 분류된 가을이는 '겨울방학 중 기초학력 향상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싫다면서 제게 한 말이었지요.
가을이는 담임 선생님과 어머니의 권유로 제 교실에서 운영하는 겨울 방학 중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거든요. 하지만, 방학 내내 학교에 나와서 오전 시간에 수업에 참여해야 하지요. 그러니 가을이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부당하기 짝이 없는 강요인 셈이지요. 가을이는 어머니가 보낸 동의서를 며칠째 책가방에서 꺼내지 않고 버티는 소심한 저항으로 어른들과 대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을이는 5학년 진급을 앞둔 4학년 아이입니다. 11월에야 겨우 구구단을 외워 이제 기초 곱셈과 나눗셈을 배우고 있지요. 문해력에서도 학년 수준에 현저히 못 미치고 있어서 모든 교과의 학습에서 어려움을 겪지요.
학교에서는 가을이에게 2년째 별도 계획을 세워 보충학습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을이를 만난 지도 넉 달이 다 되어 갑니다. 가을이는 학습 속도가 느린 데다가 걸핏하면 어렵다고 포기하려 들어 저는 교사로서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지요. 가을이의 이런 학습 태도와 특성 때문에 제 교실에서 하는 1대 1 수업이 그나마 효과적인 것 같아요.
전체 아이들이 20~30명 있는 일반 교실에서는 이렇게 느리고 학습을 중간에 포기하는 아이에 대한 개별 지도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지요. 그리고, 제 교실에서는 가을이도 제가 오로지 자기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어느 정도는 하려고 눈치껏 노력하거든요.
결국은, 가을이가 꼭 놀고 싶은 날과 눈썰매장에 가는 날에는 어머니가 사전에 저에게 알려서 결석을 허락받는 조건으로 동의서를 냈지요. 그것도 마감 날을 넘겨서 담임 선생님이 가을이를 데리고 제 교실로 와서 내고 갔습니다.
저는 가을이가 겨울 방학 동안 연속성을 갖고 날마다 보충학습을 한다면 분명히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학기 중에는 일주일에 띄엄띄엄 사흘간 제 교실에 와서 한 시간씩 공부했거든요. 그러나, 가을이가 학습 부진이 누적된 채 진급하면 5학년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따라가기가 더 어려워지겠지요. 그리고, 공부 잘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을 최고로 치는 우리 사회의 가치가 바뀌기 전까지는 가을이의 학교 생활은 이후에도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가을이가 보통 국민으로서 일상생활에 불편하지 않을 만큼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어서, 자기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고, 자기 생각을 전달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큰 수를 쓰고 읽을 수 있으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초 연산은 할 수 있게 되면 좋겠지요. 가을이는 4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그림처럼 그리던 숫자를 제대로 순서에 맞게 쓰는 법도 저와 함께 배웠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한글 습득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글은 모든 학습의 기초 도구가 되는 가장 중요한 학습 요인이며, 평생 학습자로서의 출발점이기도 하니까요. 훗날 가을이가 어떤 목적에 의해 필요한 학습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한글 해득은 꼭 일정 수준에 도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나, 가을이는 부모나 제 마음보다 훨씬 더디게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저는 가을이의 학습이 느리지만 도와주고 기다리며, 끊임없이 격려하고, 방학을 빼앗긴 억울함을 위로해 주어야겠지요. 그것이 기초학력 협력교사로서의 제 역할이고 과제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