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미 글러먹었어요!

- 아이를 좌절하게 만드는 말 -

by 전우주

다운이는 예민하고 눈치가 빠른 아이지요. 그런데, 한글 미해득으로 인한 기초학력 부진아로 분류되어 제 교실에 와서 보충학습을 받고 있습니다. 다운이는 내년에 3학년이 됩니다.


다운이는 제가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 제 교실에 오는 다섯 명의 아이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저를 경계하고 탐색했던 아이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나이 차가 50년 이상인 선생님을 두고 요리조리 '간을 본' 것이지요.


저는 제 교실에 오는 아이들에게 관대한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이 아이들은 글을 잘 읽고 쓸 수 없으니, 교실에서 늘 주눅 들고 스트레스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제 교실만큼은 이 아이들이 비교당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으며, 작은 성공에도 칭찬받아서, 당당하게 자존감을 키우는 공간으로 인식하도록 했습니다.



어느 날, 다운이가 책을 읽는데, 잘못 읽고 있었어요. 제가 틀린 부분을 지적했더니, 다운이가 버럭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저는 매우 당황했지요. 화도 났고요.


"저, 안 틀렸거든요. 선생님이 나이가 많아서 잘못 들은 거잖아요!"

"그래? 그럼 다시 읽어 볼까?"


다운이는 여전히 틀리게 읽었지요. 하지만, 저는 다운이에게 저를 따라서 읽어 보라고 제안했습니다. 여러 번 따라 읽기를 하고 나서, 다운이는 혼자 읽기에 성공했지요. 저는 다운이에게 폭풍 같은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잘하면, 3학년 되기 전에 한글을 떼겠는 걸? 그럼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잘할 수 있을 거야."

"아니요. 저는 이미 글러먹었어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다운이는 2학년이거든요. 이제 겨우 아홉 살 아이가 글러먹었다니요! 제가 그동안 다운이의 자존감이 낮다고 느꼈던 장면들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누군가 잘못 알았구나. 다운이는 이제 한글도 다 알고, 책도 잘 읽는데. 그리고, 내가 아는 2학년 아이들 중에서 다운이는 굉장히 멋진 아이야."

"아니에요. 저는 글러먹었다고 그랬어요."


그날 이후, 저는 다운이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데 더 마음을 썼습니다. 그리고, 아홉 살 아이답지 않게 시니컬한 말투와 태도를 고치도록 관심을 갖고 보살폈지요.



지금은 다운이가 제 눈치를 살피면서 예쁘게 말하고 행동하려는 사회성도 조금씩 보입니다. 물론, 아직도 고집을 부려서 저와 힘겨루기를 할 때도 있지만요. 어쨌든, 다운이가 저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자존감도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다운이는 한글 공부도 곧잘 따라 주어서, 이제는 모르는 글자가 거의 없어요. 다만 유창하게 소리 내어 읽지 못하고 더듬거릴 뿐이지요. 받아쓰기도 아직은 엉망이지만요. 어쨌든, 저와 다운이가 둘이 나란히 앉아서, 다운이에게 충분히 집중하는 일대 일 수업을 통해 다운이의 머리와 마음이 성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다운이가 3학년이 되어서는 제 교실에 안 올 것 같습니다.


이 맛에 저는 다운이가 좌충우돌하면서, 천천히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며 도와주고 기다렸지요.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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