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고독한 한글 공부

- 한글 해득이 느린 아이의 배경 -

by 전우주

저는 퇴직 후, 초등학교 기초학력 협력교사로 채용되어, 느린 학습자와 기초학력 부진아로 분류된 아이들의 학습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교실에는 한글 해득이 주요 학습 목표인 다섯 명의 아이들이 한 명씩 와서 공부하지요.


나라는 4학년 아이입니다. 4학년 치고는 체격이 큰 편이지요. 그래서 나라는 제 책상에 앉아서 공부합니다. 제 교실에는 저학년용 책상이 배치되어 있어 나라에겐 맞지 않거든요. 그리고 나라는 제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라수학을 잘한다고 저한테 엄청 뻐기는 아이예요. 실제로 나라는 간단한 계산식으로 된 연산 문제를 곧잘 풉니다. 다만, 문장제로 주어진 문항은 거의 해결하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지요. 나라는 한글을 잘 모르니까 무엇을 묻고 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답을 얻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제가 나라를 처음 만났을 때, 한글 해득을 위한 기본부터 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한글 창제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언어 교수 방법인 발음 중심 교수법으로 시작했지요. 즉, 한글 자모음 낱자 소리를 먼저 익히고, 자음과 모음을 결합해서 글자를 읽게 하는 것이지요.


발음 중심 교수법은 자모음 낱자 → 글자 → 낱말 → 문장의 순서로 학습을 진행하여 상향식 접근이라고도 해요. 학습 전이와 읽기, 쓰기에 강점을 지닌 방법으로, 한글 습득이 늦어진 아이들에게 알맞은 교수법이지요.



나라는 어렸을 때, 한글 기본 음절표를 집에서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대부분 가정에서는 아기들이 사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부모들은 눈에 잘 띄는 곳에 2절 크기의 한글 기본 음절표를 붙여 주는데 말이지요. 저도 제 아이들이 글자를 익힐 무렵, 한글 기본 음절표는 물론 집안에 있는 사물마다 이름표를 써서 붙여 두었지요. 덕분에 제 아이들에게는 한글 읽기를 따로 지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나라는 날마다 한 시간씩 제 교실에서 한글 기본 음절표를 공부했습니다. 나라가 한글 기본 음절표를 완전히 익혀서 읽고 쓰는 데까지 2주 정도 걸린 것 같아요. 나라가 제 교실에서 하루 일과를 계속했다면, 2~3일이면 충분히 익힐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첫 시간이 나라의 수업시간이었는데, 제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제가 나라에게 쏟는 에너지가 하루 전체 소모량의 절반이 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지요. 나라는 학습도 느린 데다가, 고집이 세서 수업 도중에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입을 다물어 버리면 수업은 끝이 나고 맙니다. 나라는 틀린 것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것과 숙제로 내주는 것, 꾸중 듣는 것 등을 무척 싫어해요. 어쨌든, 나라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어 버리면 정말 대책이 없어요. 제가 달래 건, 화를 내건 소용없지요. 나라는 꿈쩍도 안 해요. 백약이 무효라, 이럴 때는 저도 어떤 교육적 처방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저 시계를 바라보며 수업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거나, 나라가 스스로 다시 수업 상황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밖에요.



저는 일대 일 수업이니 만큼, 최대한 아이에게 맞추어 진행하려고 하지만 나라는 쉽지 않을 때가 더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라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가 있는지 의심되는 부분도 있어서, 상담교사에게 상담을 의뢰할 생각입니다. 저는 처음에 너무 힘들어서 나라의 수업 시간을 바꾸고 싶었지요. 하지만 제 수업 시간표는 아이들이 소속된 반의 수업 시간표와 연동되어 운영되기 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


나라는 3주 동안 외할머니를 만나러 베트남에 갔습니다. 나라가 베트남에 가기 전에 '받침 없는 글자로 쓴 이야기책'을 잘 읽고 있었는데, 설마 그 새 까먹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나라가 베트남에서 돌아오면, '겨울 방학 다문화 가정 자녀 지원 프로그램'과 제 교실에서 운영하는 '겨울 방학 중 기초학력 향상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계획이지요.


제 생각에는 겨울 방학 중에 무학년제로 운영되는 제 교실에서 특히, 나라가 많이 성장할 것 같아요. 나라는 자존심이 강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최소한 자기보다 어린 1학년, 2학년 아이들보다는 잘하려고 노력하겠지요. 그리고, 4학년인 가을이에게 갖는 경쟁심도 동기부여 요인이 될 것 같고요.


나라가 큰 소리로 막힘없이 책을 읽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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