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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Jul 12. 2024

쉼보르스카

폴란드의 시인 (Poet, 1923~2012년)

쉼보르스카를 안 지는 일 년쯤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하게 알려진 시인이라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쯤부터 나는 오랫동안 시를 읽지 않았다.  


내가 사는 방식보다 훨씬 짧게 묘사되는 시를 대하며 함축하는 어구마다 투정을 하며 심술을 부렸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 삶은 이것보다 더 촘촘하게 대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시를 읽는다는 건 듬성듬성 사는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아집에 묻혀 서점에 가도 시집이 있는 서가는 더 빠르게 지나치곤 했다.


우연히 읽게 되었던 그녀의 시, '선택의 가능성(1986년)'이 철없이 실없이 그냥 좋았다. 그녀의 웃음이 좋았다. 웃음뒤의 철학이 따뜻한 요람 같지만은 않았다는 것에 더 많이 끌렸다. '좋아한다'는 말을 좋아하는 나는 '선택의 가능성'에 든 '좋아한다'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특히, '시를 안 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는 구절을 읽고 그녀의 시에 대한 진중한 책임을 함께 느꼈다. 부끄럽기만 한 나의 가벼운 글쓰기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더 좋아하는가, 안 쓰거나 쓰거나 중에.

왜 매일 글을 쓰고 있는가, 말도 안 되는 이런저런 비정형에 비웃음이 날아든 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 쓰는 결심을 왜 나는 용기라 부르지 않는가, 안 쓰고 또 안 쓰고 나면 편할지도 모른다는 속삭임에도.


시에 대한 단언적인 문장이 그녀에게 더 귀 기울이게 했다.


나는 시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지 않는다. 진짜 악을 만드는 사람들은 시를 읽지 않는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Wislawa Szymborska)    


시를 읽지 않았던 나는 악을 만들고 있었던 것일까.


단순히 좋아 읽기 시작했던 그녀가 막중한 의무처럼 다가왔다. 쉼보르스카의 시선집 '끝과 시작' (최성은 옮김, 2023, 문학과 지성사)은 그녀의 대표 시와 더불어 노벨상 소감문, 글쓰기에 대한 철학, 번역자인 최성은의 해설로 쉼보르스카의 생애와 시를 더 진하게 보여준다.


시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내곤 했으며 특히, 글을 '많이 쓰는 것'에 대한 경계가 심해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고심하며 작품을 냈다고 한다. 시 한 편을 봄에 시작하여 가을에 완성하기도 했다는 그녀가 무척 궁금했다. 그녀의 시를 대하는 나의 자세를 바로 했다.


한 소설을 읽다가 알게 된 시 '두 번은 없다(1957년)'는 폴란드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만큼 사랑받는 시라 한다.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는 구절에 가슴이 철렁했다.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는 그녀에 심장이 어는 것 같았다.


그녀가 세상에 낸 첫 시, '단어를 찾아서(1945년)'에서는 우리가 사는 현상과 옳지 않은 시간들에 대해 제대로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는 좌절을 읽었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힘없는 말, 미약한 소리, 온 힘을 다해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는 쉼보르스카에 경건한 마음을 쌓는다.


시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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