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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Jun 30. 2024

제로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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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달걀 세 개를 까놓으니 세 개의 제로가 하얀 누드로 수줍다. 다 더해도 제로 다 곱해도 제로다.


그런 날을 살아본다.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다. 단 0.0001초라도.


세상을 살려내고 있는 내 사람을 위한 열망이 제로로 돌아갔음을 목격한다. 정제된 과당의 과잉은 내 손을 지나 어김없이 세상의 숨을 죽인다. 세상이 지나치게 달아서 손을 뻗을 만큼 가까이 나를 돌보는 사람을 해치고 있다. 제로를 지나 마이너스다.


어떻게 해도 제로였다. 수많은 균열을 감추고 있는 제로의 가장자리를 따라 유연하게 아름답게 여유롭게 걷고 있다고 여겼다. 단 한순간의 소스라치는 깨달음, 보이는 것의 확장은 타인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이었다. 


눈의 맹점을 가엾이 여기는 목소리, 여기에요, 조심해요, 이렇게 쓰여 있어요. 막막한 공포에 통곡하는 순간들이 기어이 삶을 꽃으로 다시 피워낸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세상이, 혼자라도 충분하다고 여겼던 시간들이 무너져내려 안식처의 울타리가 된다. 혼자여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이제 조금 기대도 되는 걸까.


아버지는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 결국 혼자인 거야. 아무에게도 눈길조차 주지 마라. 동정, 하지도 말고 받지도 마. 민폐는 죄악이야. 삶이란 혼자서 유유히 뚜벅뚜벅 가는 거지. 그렇게 믿고 살았다.


아버지가 틀리셨다는 거 아시죠? 이승의 마지막 숨에서 제게 그러셨죠. 혼자서 사는 건 아닌 거 같더라... 그게 뭐예요. 전 이미 자라고 때 묻고 피로하고 시작보다 끝이 더 가까울 만큼 살았다고요!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라도 남은 아버지의 말씀을 큰 다행으로 여긴다. 아버지의 주르륵 하나씩 나열된 제로의 곱하기가, 색이 더 진해진 겹겹의 더하기 제로로 가슴에 들어앉는다.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빈 것처럼 보이는 인생이란 것을 뒤늦게 깨닫고 전율한다. 


제로(zero)는 제로(지이알오)다.

공(空)은 공(功)이다.

영(0)은 영(靈)이다.

허(虛)는 허(許)다.


없다고 여겼던 것들은 스스로 살을 돋우며 채우려는 갈증을 향해 나간다. 


쿰! ܩܘܡܝ! qumi! κουμ! rise!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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