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거인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퀴클롭스(Κύκλωψ)가 어원인 사이클론(CYCLONE)은 인도양 태평양에서 일어나는 열대성 저기압이다. 동남아시아에서는 태풍이라 부르고 북미에서는 허리케인이라 부른다.
커다란 외눈을 부릅뜬 거대한 사람의 눈 안으로 들어가면 고요할 것이다. 얼마간의 평온은 눈물로 또는 재채기로 폭풍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태풍의 눈처럼 평화롭고 차분하다가 이내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휘몰아침으로 파괴와 고통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우린 그렇게 자연에 길들여져 왔으며 그에 따라 세상의 메타포와 만난다. 마음을 싸잡아 휘몰아치는 바람의 세기는 영화를 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첫 십여분에 말초신경이 타버리며 꼭지가 돌아버릴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다음 번쩍이는 쾌락과 중독, 철없음에 개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간적인 내면의 은유에 스며든다면 왜 저들은 저렇게 말하며 행동할까에 집중하기도 한다. 결국 의외의 희망과 좌절과 그 고통을 녹이고도 남을 더 큰 고통을 급기야 깨달아가는 한 사람에게 마음을 쏟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봐주는 한 사람이 건네주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오래 기억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가 손을 펴고 그녀가 그 반지를 볼 때 흔들리는 눈물을 본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과 눈물의 외침을 듣는다.
영화를 보다가 사이클론, CYCLONE이라는 다리 위 글자가 들어왔다. 가슴이 폭풍우로 쓸려가는 것 같았다. 왜 감독은 하필 이 다리 옆으로 저 네 사람이 지나가는 장면을 넣었을까.
이들은 저 사이클론, 저 외눈박이 거인 퀴클롭스와 내내 같이 춤을 추며 드라마와 코미디, 그 이면을 가득 채운다. 모두 자신의 일을 충직하게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무효로 만들기 위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맨 앞 남자, 돈에 의한 상하 관계, 종교적 의식의 성스러움을 깰 만큼의 무모하고 비루한 삶이란 걸 알까.
두 번째, 그의 동생, 가족이라 손쉬운 손발로 쓰려는 심보는 쉽게 착취당하는 자의 지방덩어리 욕망보다 차라리 가볍다.
세 번째, Anora, 희망을 가지는 건 판타지였지만 이미 끈적하고 미련해진 마음은 현실이니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한 눈물이다.
마지막 남자, 이고르,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는 눈과 원하는 것을 주고 싶은 손과 혼란스러운 마음이 당황과 가슴을 내어준다.
그렇게 넷이서 CYCLONE 푯말이 붙은 다리를 지나간다.
세상을 휩쓰는 열대성 저기압에도 누구나 살아간다.
아노라 from IMDB / 퀴클롭스 from 사이클론,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