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술의 용기

by 희수공원

동후는 준하가 향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다. 사실 그걸 알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준하가 진심으로 갈등하고 갈증에 괴로워하는 그 시간이 안타까웠다. 준하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존재가 아닌, 존재하는 것 자체에 대한 사랑은 한계에 고통받는 시간이다. 준하는 원하는 것을 지금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준하의 그 아이가 준하의 손에 닿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뜨거운 감정들이 집착으로 내닫는 것이리라. 얼마나 외로울까.


곧 3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야 한다는 것,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이 아마 준하를 더 까맣게 태우고 있는지도 몰랐다. 동후는 준하를 돕고 싶었지만 준하는 점점 더 자기 안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말이 없고 눈빛도 없는 준하는 그저 회색으로 빛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토론에 대한 열기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점점 처져갔다. 준하가 멍하게 시간을 잃을 때마다 동후는 준하의 비어 가는 시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후는 토론 때마다 쓰러져가는 준하에 몰두하면서도 다른 방향에서 오는 자신을 향한 흐릿한 시선을 느끼곤 했다.


신희서는 참 이상한 존재였다. 동후에게 아무 말도 아무 짓도 하지 않는데도 신경이 쓰였다. 마치 동후에게 뭔가 하지 말라고 계속 속삭이는 것 같았다. 희서의 큰 두 눈과 마주칠 때면 이상한 두려움에 바로 시선을 돌려야만 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하지만 동후는 준하만으로 가득 차있는 시간을 쪼개줄 여유가 없었다. 그저 걷는 준하 옆에, 그저 마시는 준하 옆에, 읽은 대로도 배운 대로도 할 수 없는 욕망을 어찌 못해 괴로워하는 준하 옆에 그냥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저녁 준하와 같이 들어간 술집에서 신희서와 마주쳤을 때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다. 만취한 신희서는 일행이 없었다. 평소라면 워낙 혼자 다니는 아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술까지 혼자 꼭지가 돌도록 마시는 희서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셋은 마주치자마자 얼음처럼 얼어버렸다. 입구를 들어오다 멈춰 선 동후와 준하, 벌겋게 달아오른 이마를 한 손으로 잡으며 느릿느릿 깜빡이던 눈으로 희서는 동후와 준하를 번갈아 보며 갑자기 팔을 휘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헤이, 유 투! 빅 브로스! 거룩한 사랑에 내 가슴이 찢어진다 찢어져! 하하하!"


희서의 팔이 준하를 칠 것처럼 거칠게 올라갔다가 흐느적거리자 동후가 팔을 낚아챘다.


"이거 놔! 너는 준하를 잡아야지, 내가 아니라!"


희서는 술 마시던 테이블에서 더듬더듬 잔을 찾아 다시 소주를 따르고 있었다.


"그게 바로 존재적인 플라토닉 러브였느니라! 오, 아름답도다!"


마지막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자기 할 말만 소리소리 지르고 나가버린 희서가 동후도 준하도 믿기지 않았다.


동후는 그때서야 뜨겁게 흔들리는 준하의 눈을 알아챘다.

keyword
이전 10화플라톤의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