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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by 희수공원

동후가 사는 희서의 집과 준하가 사는 희서의 안식처는 희서를 두 개의 다른 정체성으로 갈라놓았다. 희서의 집, 희서의 서재, 그리고 준하의 집, 희서의 서재는 서로 다른 색깔의 서재였다. 희서는 그 두 서재 사이에서 대체로 균형을 유지하며 지내고 있었다.

초등학교 수업 준비와 대학교 수업 준비가 거의 나누어져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걸 생각해 내고 희서는 두 서재 사이의 균형이 뭔지 깨달았다. 동후가 있는 곳에서는 초등학교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나가는 초등학교에 맞춰 동후가 있는 희서의 집에는 기껏해야 일주일에 세 번 가는 게 전부였다.

마치 출장 가듯 자신의 집을 들르고 있었다. 동후는 언제나 따뜻하게 희서를 맞았고 둘의 식탁 또한 자연스러웠다. 여행이나 출장으로 꽤 행복하게 자신의 집에 들르는 희서였다.

준하 또한 그런 분위기를 어색하다 한 적은 없었다. 희서는 그저 그녀 앞에 성큼 다가온 순간들을 그때그때 즐기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불법도 아니고 비도덕적이라 할 것도 없었다. 모두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사람들을 만나 최고의 시간을 만들고 있다고 믿었다.

희서에게는 준하의 집이 희서가 있어야 할 곳처럼 더 다정하게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도,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도, 심지어 희서 물건이 많이 없는 욕실에서 샤워를 할 때도 희서는 마치 자기 집처럼 편했다. 준하의 세심하면서도 부드러운 품을 그녀 또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어느 저녁, 소파에서 차를 마시던 준하가 희서를 나지막이 불렀다.

"희서, 우리 결혼할까? 너를 닮은 아이도 가지고 싶어. 가족이 생긴다는 건 축복인 것 같아."

희서는 갑작스러운 준하의 말에 당황했다. 티타임 프러포즈인 건가. 희서는 준하와 아이와 그렇게 이루어진 한 가족에 대해 생각했다. 가슴 한 구석이 뜨거워지면서도 아려왔다. 그 아기를 잃지 않았다면 벌써 여섯 살이 되었을 것이다. 나의 아기, 아니 우리의 예쁜 아기였을텐데.

준하와 같이 지낸 지 6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아이를 갖지 않으려고 일부러 어떤 시도를 한 적은 없었다. 그저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뿐이었다. 준하와 같이 있으면서도 언뜻언뜻 살얼음 같은 불안을 느껴왔기 때문일까? 사실 왜 아기가 생기지 않는지 희서도 모르고 있었다.

"응, 그래."

이상하게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그 예전 기억들이 회오리처럼 몰려와 몸이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가슴이 막히는 듯 답답하고 묵직한 돌에 눌리는 것 같았다. 준하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뭐라 설명할 길 없이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희서도 준하도 원하는 아이는 그 이후 두어 달이 지나도 생기지 않았다.

희서는 꽤 오래전 제주 여행에서 만났던 주현주라고 했던 산부인과 의사가 생각났다. 지금도 하고 있을까. 여행을 하고 나면 그때의 기억들과 추억이 될 물건들을 작은 상자에 보관해 두곤 하는 희서는 동후가 있는 희서의 집 서랍들을 하나씩 열며 확인했다. 작은 상자에는 제주의 바에서 받았던 작은 기념품, 묵었던 숙소의 명함과 함께 주현주의 명함이 같이 들어 있었다.

병원은 희서의 집과 한 시간도 더 넘게 떨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아는 병원이 따로 없으니 주현주가 연락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휴대폰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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