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 by 이준익 감독
[no 스포일러는 없다]
흑백의 선과 조용한 면들을 거치며 동주의 시가 소리로 피어날 때 나직이 밀려오는 내 안의 부끄러움이 있었다.
'참회록'이 시작된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바로 눈앞에서 푸른곰팡이를 피우며 울렁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도 '욕된' 순간들이 갇혀 몸부림치며 서로를 상처 내며 딱지가 앉을 틈도 없이 멀겋게 진물을 낸다.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지 못한다. 어떤 기쁨도 함부로 바랄 수 없다. 고칠 수 없는 지난 수치에 그저 다시 참회록을 열고 또 다시 쓴다. 사는 것이 모멸인 그런 날들.
'그 어느 즐거운 날'에 한 '그런 부끄런 고백'은 잊히지 않을 태세로 꼿꼿하게 서있다.
녹이 잔뜩 낀 거울을 깊게 골똘히 바라보면 '슬픈 사람'의 휘어적거리는 걸음걸이가 그 안에서 출렁거린다.
윤동주의 '참회록'에 갇혀 억센 눈물 같은 몇 개의 말로 내가 했어야 할 그 이야기가 가만히 똬리를 틀고 앉았다. 하고 또 해도 다시 해야 할 참회의 그 언어들.
새로 시작하는 것이 많은, 꽃이 피기 시작하는 이 계절에 어떤 사람은 비바람을 기다린다. 고이 받아들이며 쓴 물을 토해내도 흔적이 남지 않을 그 폭풍 속 같은 그런 세찬 빗물을.
영화에서 정지용 시인은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자조한다. 동주 또한 '삶이 어려운데 쉽게 시가 쓰여 부끄럽다'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하지만 내가 아는 부끄러움이 충분히 절절하냐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절망한다.
분명,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부끄러워하는 것과 부끄러움을 모르면서 부끄러운 척하는 것은 다르리라. 앎과 모름 사이에서 내가 어디쯤 표류하고 있는지 알 길은 없다.
이상하게도 잘 살아냈다고 생각하는 그런 날에도 잠 못 들게 일으켜 세우는 껄끄러움, 그런 걸 혹시 부끄러움이라 불러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요즘은 마음 밖으로 내놓아야 하는 것들과 안으로 들여 두어야 하는 것들이 바뀐 것 같아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