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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호 Aug 16. 2023

내 맘 같지 않네

현대인들의 갈등 문제를 조명한다

현대 문명은 예전에 없던 다양한 형태의 직업과 다름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전문적인 지식이 철저히 요구되고 있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에 매달려도 결코 남들보다 잘 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많은 SNS와 네트워크의 접속 안에 살아가는 우리는 오히려 세상과 단절되었던 시대보다 더 많은 갈등과 격차의 차이로 인한 열등감에 노출되고 있다. 

    

실제 나의 방향성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오인받거나 하지 않았음이 좋았었다는 것도 자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만히 뜯어보면 그 행위 또한 내가 남에게 박수받기 위함이요, 남들보다 나아보이기 위함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에게서 절대적 실력과 능력이란 없다. 상대적인 잣대에 의해 뛰어나다와 그렇지 못하다가 갈리기 때문이다. 시험을 보는 것도, 어떤 조직에 몸담을 때도, 여럿이 모이면 반드시 선은 생기며, 이 선의 높이가 결국 실력이 있다와 능력이 뛰어나다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현대사회의 생활이 어렵고 갈등이 심한 요인이 결국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지 신이나 절대 주권자가 만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이나 장사를 하는 경우나 직장에 몸담아 있을 때는 말할 나위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는데도 이러한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골프를 치던, 마라톤을 하던, 사진 동호회 등에 가입이 되었건 분명 내가 좋아해서 하는 취미생활조차도 모임이나 단체에 속하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에 대한 답은 어느 누구도 쉽게 내릴 수 없다고 본다. 남성보다는 신체적으로 예민한 여성에게서, 세상을 오래 살아온 어르신보다는 청년층에서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유튜브를 하거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할 때도 좋아요 버튼을 많이 받으면 기분이 좋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경우가 훨씬 많다. 온갖 조명과 멋진 그래픽으로 처리된 사진과 동영상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이때 나의 사진과 영상이 눈에 띄기는 정말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현상을 모르고 왜 친구들은 나를 알아주지 않지? 왜 내가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지? 하는 불만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기 마련이다. 

    

정말 ‘내 맘 같은 세상은 없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지만 같이 여행 갈 친구가 없고, 나의 고민을 속 시원하게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었던가? 죽고 못 살던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적이 되고 말 한마디, 문자 하나에 결별하는 세상이고 보면 갈등 문제는 정말 어렵고도 어려운 영원한 숙제로 보인다.

    

경제적 문제, 사회적 지위, 현재의 직업, 지식의 정도와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고 죽기 전까지 속 시원히 이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결국 현상을 탓하기보다는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이 또한 수없는 자료와 지식은 넘쳐나지만 합리적이면서도 종합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곳은 지금껏 아무 데도 없었다. 아마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고 절대적인 신봉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도, 목사님이나 신부님이나 스님을 찾아가도 풀리지 않는 이 갈등의 문제는 과연 어떻게 하여야 합리적으로 소화하고 동행해야 할까? 말도 안 되는 사소한 다툼까지 법정에 가야 하나 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뉴스를 접하며 결국 급성장한 한국의 상황과 빈부의 격차, 이성의 차이, 종교적 갈등, 확연하게 깊어진 가치관의 차이가 종합적 갈등의 문제를 부추겼다고 보아진다.

     

아울러 남을 배려하기에 앞서 나의 감정이 앞서고 ‘우리’보다는 ‘나’ 위주의 서구 문명이 급속히 우리 사회에 스며들면서 자연스럽게 문제에 대한 골은 깊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인심 좋고 성격 좋은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해도 ‘사람  좋네’라고 표현을 하였지만 지금은 ‘능력 없네’라고 하며, 성격이 까탈스럽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만 경제적으로 부유하면 예전에는 ‘성격 지랄 같네’라고 하였지만 지금에는 ‘능력 있네’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고 지금 이 시간에도 ‘좋다’와 ‘나쁘다’의 가치가 변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영원히 나의 자존감을 유지하기는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SNS에 자료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누가 뭐라던 나의 글을 쓰며,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전념하면 이러한 서운함에서는 벗어나지 않을까? 당장은 어렵지만 이 또한 시간이 필요하며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러려고 노력해 보겠다. 

    

내가 갈등을 가진다는 것은 분명 남이 있어서고, 남이 없기를 갈망한다면 무인도로 가야 한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남과 함께 산다는 것이고, 나의 노동의 가치를 지불하고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도시가 더욱 번화하고 싫든 좋든 모여 사는 것이다. 

    

사회는 더욱 다양성을 인정할 것이며 예전에 생각지도 못하였던 직업들을 토해낼 것이다. 현상을 현상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 항로를 수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될 것이며 내가 조금 손해 보고, 얻기보다 주는 것이 결국 더 큰 것을 얻게 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실천하여 보자.

     

말이 쉽지 정말 어렵고도 어려운 문제이다. 글을 쓰는 나조차도 어려우며, 독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나도 과연 자격이나 있을까? 하지만 하얀 지면에 이 글을 기록한 죄로 실천해 보기로 결단을 한다. 

    

SNS에 올라온 지금까지 자랑질이라고 여겼던 사진들에 대해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센스, 유튜브를 보며 필요한 지식을 정제하여 듣는 연습, 카페나 블로그의 글을 나의 지식의 한편으로만 삼을 수 있는 능력,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나와 상반된 주장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공감하는 포용력.....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분명 나는 약속을 지킨 사람이 될 것이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실천을 하지 못한다면 나는 오히려 더한 사람이 될 것이다. 

    

갈등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시절 읽었던 ‘갈등의 사회적 기능’이라는 책에서 물질문명의 변화와 함께 급속히 다가올 미래의 갈등 문제를 보았고, 현재 이러한 문제 속에서 살아가며, 앞으로 더 심화되는 과정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 너도 맞고, 나도 맞다. 그러니 우리 같이 가세나...

짧은 지식의 나는 오늘 나를 위로하는 글로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졌다.


칼럼니스트/이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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