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수가 군만두에 치를 떠는 것처럼, 나도 교회라는 단어만 들어도 치를 떤다. 모태신앙에 따라 10년 넘게 교회를 다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강요하는 것이 싫을 뿐이다. 어쩌면 그런 강요가 없었다면 성실하게 교회를 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릴 땐 성경을 정말 싫어했었는데, 지금 보면 성경은 정말 아름답다. 성경의 내용을 알면 많은 문학에서 재미를 몇 배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경우도 그렇다. 어릴 때 강제로 읽었던 성경의 내용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존 커피가 할의 아내에게 키스하면서 그녀의 뇌종양을 치유한다. 할이 보고 있는데 키스를 갈겨버린다고? 사람을 찢을 것 같은 흑인 거인을 겨눈 총을 거두고 집에 들이고, 아내와 독대하게 해줬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됐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
델의 사형 장면에서 고통을 공유하는 그의 모습과 할의 아내의 질병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며 예수가 떠올랐다. 순례를 다니며 질병을 치료해준 예수. 죄지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존 커피의 키스는 거룩한 입맞춤이었다.
존 커피가 질병을 치유해주자 할의 아내는 커피와 함께 어둠을 걸어다녔다고 말한다. 그녀는 커피에게 크리스토퍼가 새겨진 목걸이를 걸어준다.
크리스토퍼는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약자를 어깨에 태워 강을 건너게 해주는 거인이다. 할의 아내가 말한 어둠을 같이 걸어다닌 것은, 존 커피가 할의 아내를 업고 강을 건너게 해 준 것이다.
어느 날 크리스토퍼는 아이를 어깨에 지고 강을 건너는데도 엄청난 무게를 느낀다. 아이는 자신이 예수라고 밝히고, 무거운 이유는 세상을 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He kill 'em with they love. That's how it is ever' day. All over the worl'..." - 존 커피
자매의 사랑을 악용해 두 여자아이를 살해한 빌에 대해 이야기하며 세상이 다 이렇다고 말한다. 존 커피가 짊어지고 사는 세상의 어두운 면이다.
"저에게 두건을 씌우지 말아주세요. 저를 어둠에 가두지 마세요, 저는 어둠이 두려워요." - 존 커피
존 커피는 할의 아내를 치유해주고 어둠의 강을 건널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나 존 커피는 어둠 속에 혼자이다. 그게 크리스토퍼가 짊어진 세상의 무게이다. 존 커피는 이런 삶에 지쳤다고 죽음이 구원이라고 말한다.
존 커피의 전기의자행은 예수의 십자가행과 비슷하다. 죄지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는 예수, 나서지 말라는 예수의 말에 슬퍼하며 지켜보는 제자들, 예수를 매달게 선동한 사람들. 각각 존 커피, 교도소의 직원들, 유가족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I'm sorry for what I am." - 존 커피
사형 직전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는 물음에 자기 자신이 원망스럽다고 말한다. 예수와 닮았지만 그는 타의적으로 예수의 역할을 맡았다. 죽음을 구원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지친 존 커피의 마음이 느껴졌다.
여담)
성경에선 회개를 중요시한다. 영화에서도 똑같은 사형수이지만 죄를 반성한 델과 그렇지 않은 빌의 최후는 다르다. 델은 그린마일을 걸어가는 과정이 나오지만, 빌은 그냥 총에 맞아 죽었다. 그린마일을 걷는 것은 죽음에 다가가는 과정을 의미하지, 죽음 그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죽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