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 일탈을 할 수 있을까?
기존에 살아왔던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고 실천한다는 것을 일탈이라 말한다면, 사람은 어떤 계기들로 자신 앞에 놓인 안전한 오솔길을 빗겨가 아슬아슬한 철도길로 일탈할 수 있을까?
주인공인 그레고리우스는 고전어 학문과 관련한 퍽 높은 명성을 가진 교수지만,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과 틀에 박힌 일상에 조금씩 지쳐간다. 그 순간 다리 위의 한 여인을 마주하게 되고, 그 여인의 포르투갈어 억양에 매료되어 장장 600페이지에 가까운 여행을 떠나게 된다. 표지만 보고 이 책은 나이 많은 교수와 포르투갈 여인의 이제는 썩 신선한 주제가 아닌 소위 '나이를 초월한 로맨스'를 예상하고 도대체 언제 그 여인이 다시 나오나했지만 책을 덮을 때까지 다행히(?) 그런 식상한 멜로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무작정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탄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순간순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러던 중 한 책을 구하게 된다. 바로 그 책이 그레고리우스의 삶을 참 많이도 바꿔놓기 시작한다. 책의 주인공은 프라두라는 한 사람의 고뇌를 담은 수필의 형식인데, 소설은 바로 이 프라두라는 사람을 더 자세히 알고자하는 그레고리우스의 노력으로 채워지게 된다.
의사이자 철학자로서 종교의 권위에 대항했던 이 레지스탕스는 학창 시절부터 천재의 기질이 발현된다. 이 천재의 기질은 그에겐 축복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에게 썼던 편지, 그리고 아버지가 프라두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 속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기엔 너무 철이 들었고, 똑똑한만큼 두려워져만 가는 아들에 대한 모순의 감정이 참 많이 담겨있다. 그럼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썼던 편지는? 보이는 위압과 두려움보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더 강하게 요구하고 핍박하는 삐뚫어진 모성애에 프라두가 느끼는 분노 또한 가볍지만은 않다.
멀리서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보면 완벽했던 그의 유년기는 결국 앞으로의 고통이 쌓여 가는 비극의 주춧돌이었다. 실패한 첫사랑, 인정 받지 못한 의사로서의 선택, 또 실패한 사랑, 그리고 결국 실패한 우정. 이 레지스탕스는 어느 정도의 사랑과 우정을 맛보았을테지만 결국 찌는 듯한 잔인했던 슬픔으로 생을 마감한다. 불행한 삶이었을까?
의사로서의 선택과 레지스탕스로서의 선택 중 뭐가 더 옳은지 판단하는데는 타인의 침과 분노가 아니라 자신의 소신과 신념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패한 사랑과 우정에서도 자신의 소신과 신념이 일정했던 선택이라면 썩 나쁘지만도 않은 경험이다. 어찌보면 비극의 삶이었지만 누군가가 나의 흔적을 찾기 위해 자신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게 한 삶이라면 그래도 썩 잘 살아온 삶이 아닐까? 그리고 그레고리우스 또한 썩 멋진 일탈을 한 건 아닐까
그레고리우스에게 일탈의 방아쇠롤 담겨준 프라두를 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