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달 전부터 출산 휴가에 들어가겠다고 교감선생님께 말했다. 독박육아를 견뎌내고 있는 와이프를 배려하는 시간인 동시에 나 스스로를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교감선생님은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해주지 않았다. 내 빈자리를 메울 강사를 제때 구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병가를 들어간 탓에, 결국 내가 맡아야 할 일들이 동학년 선생님들께 고스란히 떠넘겨졌다. 병가는 권리이지만, 무책임한 병가의 무게는 나 혼자가 아니라 주변 모두가 감당해야 했다. 나는 출산 휴가에 들어가면서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다. 자신의 권리가 남의 권리를 짓밟은 경우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무책임하게 병가를 내는 당사자가 정작 다른 교사들에게는 집안 행사로 인한 단 하루의 연가조차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자기 사정에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타인의 필요에는 인색한 태도, 권리라는 철벽 방패 뒤에 숨어 책임을 가리는 모습은 참으로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런 상황을 겪을수록 나는 ‘권리와 책임은 어디에서 만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히 누구에게나 주어진 자유다. 하지만 그 권리의 행사로 인해 타인에게 불필요한 상처가 생기고, 공동체가 흔들린다면 그 자유는 정당성을 잃는다. 나는 무책임한 권리가 책임 위에 올라설 때, 그것이 얼마나 많은 균열을 만들 수 있는지를 가까이에서 보고 있다.
다른 부장 교사의 모습 또한 나를 곱씹게 만든다. 그는 맡은 업무를 성실히 처리하며, 무려 여섯 가지 겸직을 소화할 만큼 열정적으로 보인다. 실제로 성과도 많았고, 교사로서 자기 계발을 위해 부단히 애쓰는 모습은 언제나 존경할 만하다. 그러나 그 성과의 그림자 속에서 교실 앞 아이들은 과연 얼마나 보살핌을 받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그 선생님의 반이었던 우리 반 아이가 올해 나에게 물었다. “작년에는 이 프로젝트 그냥 책만 사주고 끝났어요.” 아무리 많은 성과를 내고 커리어를 쌓아도, 정작 아이들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교실 안에서의 시간에 진심을 대하지 못하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교실 앞 책임과 자신의 욕심이 따로 노는 순간, 교사의 성과는 허망한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의 차례다. 나는 올해 2학기에 출산 휴가와 불가피한 병가로 교실을 잠시 비우게 된다. 이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 와중에 또 하나의 고민이 다가왔다. 바로 대학원이다. 1월에 예정된 학기를 그대로 이어가려면, 결국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또 다른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학원은 나의 권리다. 더 배우고, 더 성장하고 싶은 열망은 분명 소중한 나의 몫이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의 배움을 책임지는 일과 저울질해 보았을 때, 나는 권리보다 책임을 선택해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다. 그래서 올해는 대학원을 휴학하기로 했다. 물론 마음 한켠에는 아쉬움이 있다. 내 발전을 조금 미루는 선택이 옳은가,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도 있다. 하지만 권리 위에 책임이 놓일 때, 그 선택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삶을 더 단단하게 세워주는 주춧돌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아이들의 눈빛 속에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배움이 있다. 언젠간 다시 권리와 책임 사이에서 흔들릴지라도, 끝내 책임을 붙드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