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런닝, 그 안의 쉼

by 영복

교직 생활 15년 만에 처음으로 휴가를 냈다. 명목상으로는 출산 휴가이지만, 간이식 검사와 수술이 예정되어있어 사실 휴가를 가장한 병가이다. 일수로만 따지면 단 몇 달일 뿐인데, 그 공백 속에 선 내 마음은 그 기간이 사뭇 크게 느껴져 마음 편히 쉴 수가 없다. 오랫동안 이어진 교직 생활에서 나는 늘 ‘해야 하는 일’의 무게에 익숙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새로운 수업과 에듀테크의 쓰임을 공부하고 계획했고, 때로는 교육실습생을 지도하며 경주마처럼 쌓아온 점수와 기록들이 나의 자랑이자 발자취였다. 그런데 그 모든 흐름이 잠시 끊기자, 나는 알 수 없는 불안에 휘말렸다. 승진의 길에서 뒤처지는 건 아닐까, 내년의 육아 휴직이 또 다른 공백으로 남아버리는 건 아닐까. 쉬고 있음에도 쉴 수 없는 마음, 그 마음은 나를 끊임없이 흔들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나만의 고민이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가진 그림자다. 우리 모두는 잠시 멈추는 순간에도 스스로를 채근한다. 남보다 느리게 걷는다는 두려움,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곧 사라질 것 같은 강박. 쉼은 오히려 불안을 불러오고, 어쩌다 찾아온 각자의 고요 속에서도 마음은 분주히 달린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을 사회라는 경쟁의 트랙 위에 세워놓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세워온 것인지도 모른다.


쉬면서도 몸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기에 주 3회씩 체계적으로 런닝을 하고 있다. 런닝을 하다 보면 숨이 차오르고, 다리에 무게가 내려앉는 순간이 항상 찾아온다. 그럴 때 속도를 무리하게 올리면 금세 지쳐 계획한 페이스를 놓치고 결국 퍼지고 만다. 오히려 점점 페이스가 빨라질 때 발걸음을 잠시 늦추고 호흡을 정리할 때, 다시금 런닝은 이어진다. 급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가을 바람의 결을 느끼며, 잠시 멈추는 그 시간이 결코 장애물이 아님을, 그것은 더 먼 길을 위한 여유이자 완주를 위한 쉼이라는 것을 런닝이 가르쳐주고 있다.


교직 생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금의 휴가는 단순한 공백이 아니다. 나를 잠시 멈춰 세워두는 이 시간은, 교사의 길을 더 길고 단단히 걸어가기 위한 숨 고르기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들과 다시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긴 호흡을 회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교실에서 오래도록 빛나기 위해서는, 지금같은 쉼의 순간을 온전히 느껴야한다. 그러니 뒤처진다는 불안은 어쩌면 착각일지 모른다. 러너가 자기 페이스를 지켜가듯, 나 또한 내 삶의 리듬을 찾아가는 중이다. 잠시 늦추어 걷는 이 발걸음이, 결국에는 더 멀리 닿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안다. 현대인의 불안 속에서도, 쉼은 분명 새로운 시작을 기약한다. 나의 휴가는 멈춤이 아니라, 다음 여정을 위한 숨결이다. 그리고 그 숨결은 내가 다시 달릴 날들을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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