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안는 쇼트들로 저항하기
예컨대 쇼트를 나눈다는 것은 마주 봄의 불가능성으로부터 출발한다. 먼저 공간이 둘로 나뉘고, 시간이 둘로 나뉘며, 감정선이 둘로 나뉜다. 공간과 시간의 문제는 기술적인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감정의 문제, 심리적인 지속을 유지하는 것은 정성일의 지적대로 불가능에 가깝다. 오즈는 쇼트를 나눈다. 쇼트와 리버스 쇼트. 인물들이 이쪽과 저쪽에 위치하는 순간, 그들은 마주 보게 되는 동시에 그 마주 봄의 가능성을 시험받게 된다. 오즈는 쇼트 간의 마주 봄이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두고, 그로부터 출발하는 작가다. <동경 이야기>의 류 치슈는 하라 세츠코와 마주 보고 있으면서도 묘한 시선의 엇나감 상태를 유지한다. 두 얼굴은 마주 보고 있지만 시선 방향성의 측면에서 서로에게서 빗나가며 만나지 않는다. 쇼트와 리버스 쇼트는 마주 봄의 불가능성을 말한다. 그런데 그 두 개의 쇼트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은 둘의 연대를 역설한다. 가장 내밀한 사이의 인물들 간의 시선마저 실패하는 오즈의 마주 봄의 쇼트 앞에서 던져지는 질문은, 결국 진정한 내면의 소통은 가능한지의 문제이다. <동경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두 인물이 진실되게 대화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장면이, 할머니가 뒤돌아선 아이의 뒷모습에 대고 나지막이 혼잣말하던 순간이라는 점은 오즈가 마주 봄의 불가능성 앞에서 내뱉는 아이러니한 한숨처럼 다가온다.
혹은 쇼트의 나누어짐 문제를 아예 다른 차원으로 이끌고 가는 작가들 또한 존재한다. 로메르는, 오즈와 달리 쇼트들을 서로에게 열어둔다. 혹은, 일종의 바람이 쇼트 사이를 흐르도록 한다. 쇼트에게 통풍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해변의 폴린>이 감히 오즈와 비슷한 문제를 마주했다고 가정해 보자. 소통의 불가능성은 <해변의 폴린> 각본에서 진실의 왜곡, 그 곡해가 인물들의 입을 거칠 때마다 심해지며 대두된다. 오해는 풀리나 그를 통해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진실이 밝혀진 순간은 바캉스가 끝난 후 폴린이 집으로 떠나는 순간이기에. 그럼에도 폴린과 실방의 화해가 우리에게 열어두는 것은 얕은 희망이다. 진실에 대한, 마주 봄에 대한 얕은 희망. 이러한 희망적 태도는 로메르가 쇼트를 나눈 뒤, 그들에게 부여하는 통풍성에서도 드러난다. 인물들은 갈등하고, 그들 간의 진실된 소통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며, 신경전을 벌이는 두 남자의 쇼트는 그들의 마음처럼 서로에게 굳게 닫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화난 상태로 방으로 올라가거나 그 방을 떠나는 인물은 언제나 그가 조금 전까지 정 반대편에서 노려보던 인물의 쇼트를 경유해 간다. 둘의 쇼트는 마주 봄의 관계 속에서 완전히 닫혀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피에르의 몸이 그의 쇼트에서 일어서서 앙리가 점유하던 쇼트를 지나쳐 가는 순간, 관객은 그 쇼트들의 통풍성을 느낀다. 찡그린 눈으로 마주 보던 모든 쇼트는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처음부터 완전히 개방되어 있던 셈이다.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는 마주 봄으로 나타나는 시대적 폭력을 향해 통풍성으로 저항한다. 쿠아론에게 시대라는 것은 오즈의 비관 서린 분단을 강제하는 것이다. 클레오를 버리고 가는 페르민, 둘은 정 반대편에서 서로를 마주 보게 된다. 페르민이 알몸으로 선보이던 무술은 정부의 군사 훈련에서 배운 것이었으며, 그는 곧 군대에 끌려간다. 군대는 병사와 교관을 쇼트와 리버스 쇼트의 상태로 마주 보게 만들며, 병사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가족 역시 마주 보게 만든다. 페르민이 트럭에 올라탄 이후 다시 한번 클레오를 마주 보게 되는 순간은, 그가 클레오와 같은 시민들을 총으로 진압하는 과정 중이다. 이렇듯 마주 봄, 모든 소통의 불가능을 동반하는 국가적 폭력 앞에서, 남겨진 여성들의 저항은 모든 쇼트들이 서로 연결되게끔 만드는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스미는 오즈가 절대 1층과 2층이 연결되는 계단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로마>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며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이 그를 오르내린다. 분단 없이 하나가 된 공간 속을 바람처럼 가볍게 거니는 여성들과 아이들은 한때 그들이 자신의 남편과 애인을 마주 봐야만 했던 폭력의 순간들을 내부적으로 치유해 나간다. 외화면과 내화면의 관계에도 통풍성이 존재하는데, 집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두 방의 쇼트가 하나의 집에 속해있음을 귀로 감각하게 만든다. 소리는 바람과 마찬가지로 무형 상태로 쇼트 간을 횡단한다. 이렇듯 이 집의 여성들은 모든 분단의 간격을 통풍성으로 메우며, 필사적으로 분단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끝에 이르러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것은 집을 통과한 바람이 우리에게 전달한 소리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