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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hhhye Jul 27. 2023

너는 아픔을 무서워하지 않아.

2022.03.27


1) 할머니의 부재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해달라고 할머니와 매일 기도했다.


> 코로나가 한참 폭발적으로 퍼졌던 2022년, 우리 집 역시 피해 갈 수 없었다. 나는 대학생활로 자취 중이었기에 타 지역에서 식구들의 완치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식구들 모두 완치가 되었다는 소식에 수업이 끝나고 바로 자취방에서 집으로 달려갔는데 할머니가 이상했다. 침대에서 작게 숨만 쉬고 있는 할머니가 너무 낯설었다. 내가 왔다 해도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 그렇게 나는 할머니 얼굴을 보고 평일의 대학교 수업을 위해 일요일 밤에 다시 자취방으로 갔다. 그렇게 딱 하루 뒤에 엄마에게 집으로 와야 할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다. 처음으로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집으로 얼른 와봐” 한 마디였지만 모든 상황이 내 머릿속에서 다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업과 알바를 모두 던져놓고 집으로 달려갔다. 할머니가 집에 없었다. 이미 내가 갔을 땐 응급차가 다녀간 후였다. 할머니 침대 위 어수선한 이불과 치우지 못한 밥상만 남아 있었다. 나도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보호자 1명도 어렵게 들어가는 이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일은 집을 단정히 치우고 식구들을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다. 할머니의 이불을 정리하고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다가 바로 다시 닫았다. 집에 남아있는 할머니 냄새가 혹시라도 이게 마지막이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창문을 열 수 없었다. 그리고 주방으로 가 할머니가 먹었던 밥상을 치우는데 밥그릇에 밥이 그대로 있었다. 딱 한 수저 어찌 뜨신 것 같다. 그 밥을 보며 눈물이 왜 이리 나던지 25년 인생 중에서 설거지하다 눈물 펑펑 흘린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집을 치우다 보니 늦은 저녁이 되었다. 10시가 넘으면 할머니는 항상 벽을 보고 침대에 누워 잠에 들어계신다. 그런데 그 침대가 비어있으니 할머니의 부재가 가슴 시릴정도로 저릿하게 느껴졌다. 마치 천장 없는 집에 있듯 집이 너무 공허하고 추웠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할머니는 보름정도만에 집으로 건강하게 돌아오셨고 다시 내가 알던 우리 가족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에게 “미우나 고우나 아프지만 말자. 할머니”라고 말했다. 그제야 할머니가 피식 웃었다. 




2) 질병과 맞짱 까는 법

> 할머니 연세쯤이 되면 몸에 이상이 없을 수가 없다. 할머니는 당뇨, 대상포진 등등 크고 작은 질병을 한가득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완치를 목적으로 병원에 가지만 할머니는 유지의 목적으로 병원에 간다. 굳이 완치를 위해 치료하는 것이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병원에선 할머니의 건강유지를 위해 필요한 약을 한 달치씩 처방해 준다.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할 것 없이 질병과 같이 사는 것이다. 그러다 가끔씩 또 다른 질병이 툭하고 할머니를 찾아오면 엄마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엄마, 밥만 잘 먹으면 돼. 그까짓 게 뭐라고 덤벼보라고 해!” 그럼 할머니도 “그래 이 늙은이 몸에 덤벼봐라”라고 말하며 다 같이 마음을 다잡는다. 그게 우리가 질병과 맞짱을 까는 방법이다.







3) 건강하길 바라는 욕심

> 우리 가족은 매년마다 바다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간다. 올해 역시 할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다녀왔다. 한 해가 지날 때마다 돌아다니시는걸 더 힘들어하시는 게 눈에 보인다. 그럴 때마다 “내년에도 같이 올 수 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먹먹해진다. 생각해 보니 나는 새해가 올 때마다 할머니에게 부담 아닌 부담을 주곤 했다. “할머니! 나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시집갈 때까지만 건강하게 계셔야 돼!” 매년 이유는 달라졌지만 다 같은 말이었다. 오래오래 옆에 있어달라고, 그리고 건강해달라고. 이것 또한 점점 약해지는 할머니를 보며 조바심이 나서 그랬던 것 같다. 내 한마디가 할머니에겐 부담으로 느껴졌을 것인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한 마디는 집안 막내이자 손녀딸로서 부리는 유일한 내 투정이자 부탁이었다. 그래서 작년에도 올해에도 그랬고, 내년에도 이 못난 손녀딸의 투정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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