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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는 어디에 있을까 – 내러티브 속에서 살아가기

New philosopher vol.29를 읽기 시작하며

by 진동글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야기를 마주한다. 뉴스에서, 광고에서, SNS 피드에서, 그리고 우리가 쓰는 말과 듣는 말 속에서조차도.


그 이야기들은 때로는 논리처럼, 진실처럼, 상식처럼 포장되어 우리 앞에 놓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도 사실은 그렇게 만들어진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일 수 있다.


『News from Nowhere』라는 철학 잡지의 서문은 경제, 감정, 뉴스 등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계를 “이건 정말 진짜일까?”라는 물음으로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경제는 보통 가장 객관적인 영역으로 여겨지지만, 이야기는 여기에도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비트코인이다.


무엇이 이 가상의 화폐에 가치를 부여했을까? 블록체인이라는 기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것은 미래의 돈”이라는 내러티브가 우리를 설득했던 걸까.


케인스는 숫자와 이성이 아닌, 감정과 기대가 사람을 움직인다는 '야성적 충동'이라는 말을 썼다. 결국 경제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믿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지루함, 권태감, 공허함 같은 감정은 어떨까. 우리는 종종 아무것도 하기 싫고, 의미 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그저 하릴없이 무언가를 계속 소비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그럴 때면 늘 '내가 게으른가?'라는 자책이 따라온다.


모든 위대한 책에는 지루한 부분이 있고, 모든 위대한 삶에도 재미없는 시절이 있기 마련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공허함은 실패나 결핍이 아니라, 변화 전의 조용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물론 게으름에 대한 합리적 변명이라고 볼수도 있지만 말이다.


지루함조차 비효율적으로 여기는 이 사회가 우리를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내러티브에 묶어둔 건 아닐까.


뉴스 미디어도 내러티브와 뗄 수 없는 부분 중 하나이다. 뉴스는 보통 사고, 범죄, 주식 급등락 같은 '사건'으로 구성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뉴스는 사회의 만성적인 문제, 혹은 반복되는 문제를 담지 않는다. 뉴스가 말하는 '오늘'은 빠르고 파편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요한 변화조차 갑자기 등장한 위기로 착각하곤 한다. 사실은 천천히 쌓여온 일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그날의 헤드라인만을 현실이라 믿고, ‘일상의 지속성’을 사유할 기회를 점점 잃어간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품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진짜라고 믿고 있는가?”




도덕 교과서에서는 '비판적 사고'에 대해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 설명한다. 이때 비판적 사고란 무조건 의심하라는 말이 아니다. 어떤 것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기 전에, 그 속에 어떤 전제가 깔려 있는지를 되물어보는 자세인 것이다. 비판적 사고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힘이기도 하다.

내러티브는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고, 나를 설명한다. 하지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서사에 휘말린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믿음을 멈춰 세우고, 그 믿음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남기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아야한다. 그것이 내가 되고 싶은 현명한 어른이기도 하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누군가에겐 진심이었던 말이, 다른 누군가에겐 조작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이야기 앞에서 멈춰 서게 되는지, 어떤 감정에 오래 머무는지를 관찰하는 일은 가능하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에 가까운 것이 무엇일까. 아마 당장 답을 내리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그것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 앞에 머물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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