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통과한 그 계절이 이렇게 강렬한 자국을 남길 줄은 몰랐어
민미레터, 예나 님의 독립출판물인 <머무르는 계절>을 새벽 늦게까지 읽었다. 그녀들의 글은 청춘을 붙잡으려 애쓰고, 찬란한 순간에 기뻐하고, 놓지 못할 일 그리고 마음을 어찌해야 하냐고 울고 있었다. 으레 대다수의 청춘들이 그러하듯 일에 있어 '좋아함'과 '그러하지 않음'을 갈등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나이차가 있는 둘이 서간처럼 오간 글들은 마음을 적셨다. 왜 일까? 통과한 그 계절에 나도 한자리 차지해 울고 있어서 일까.
같이 여행을 떠나 얻은 조각들은 각자 달랐지만 그들은 몇 년 전에 떠난 이 여행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이렇게나마 정리해 두어야겠다고 글을 쓴다. 촉촉이 마음을 적시는 글을 보니 놓지 못하는 일에 대한 마음이 미련한 나 같아서, 다 그렇지 뭐 하고 살기엔 나는 심하게 융통성이 없어서 이렇게 분투하며 살고 있다고 깨달음을 얻게 만든다. 둘은 자신만의 고유색을 만들어냈다. 노력도 들어갔을 테고, 평탄한 길이 아니기에 많이 아파하고 쓰러져 봤을 테다.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알지 않을까. 마음이 사람을 울고 웃게 만든다는 사실을.
속절없이 계절은 흘러가고 다시 돌아온다. 새벽이 아침 되듯, 내가 결국 깨어야 할 시간이 가까워져도 눈 감지 못 했던 건, 이들의 글에 용기를 얻어서도, 위로를 받아서도 아니다. 그저 마음이 자리해 있단 걸 보았기 때문이다. '아' 하고 내뱉은 짧은 탄식은 점차 굵어졌다. 문단 통째로 떼어와 온몸 곳곳에 붙여놓고 싶은 글은 대단해서가 아니다. 안다는 걸, 누군가는 그 마음을 알고 있다는 걸, 알아서 실천해 닿아있다는 걸, 그렇게 보여주고 있다는 게 돌아갈 집이 있다는 이치 같았기 때문이다.
머무르고 떠나는 나그네의 삶. 결국 시간을 걷는 여행자의 삶은 '어느 누구나'이다. 만원 버스에 몸을 맡겨 매일의 일터에 도착할 때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갈 수밖에 없단 사실에 눈 한 번 질끈 감는 것으로 대신한다. 대신하는 순간은 쌓이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만든다. 결국, 기로에 서게 된다. 서게 될 기로라면 빠른 게 좋을까, 느린 게 좋을까. 사실, 정답은 없지만 내가 이것보다 더 힘들어하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순간이 곧 찾아올 테지.
우리의 감정은 유약하지 않아. 생동감이 넘쳐. 힘이 있기에 펄쩍이며 절로 버치는 거겠지. 힘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게 아마 생의 과제이지 않을까. 따듯한 글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웃음 짓게 해. 그것만큼 좋은 글은 없어. 일깨우지 않아도 절로 알게 되는, 피어오른 감정은 누를 수 없는 연기거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지만 연기가 향초에서 시작됐다면 향은 주위를 감싸고돌지. 향이 곧 자리를 알려준다면 나는 그 향을 내는 초가 되고 싶어. 분위기, 색깔, 나. 그게 곧 같은 말이라면 말이야.
피고 지는, 한 계절이 진다면 나는 가을을 견디며 우울해지겠지.
잘 견뎌내서 한 편의 글이 나올 수 있도록 조금만 더,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는 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