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보는 것은 좋아해도 그리는 것은 즐기지 않는다. 연필로 오일파스텔로 한 두 번 그리고 다시는 그리지 않았다. 내가 관심이 없으니 가족들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할 거라 생각도 못했다.
생각해 보면, 동생은 미대입시를 준비했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줄곧 화실에 다녔다. 엄마도 어릴 때부터 미술대회에서 상도 여러 번 탔다고 말해줬는데 이러한 사실을 잊었다.
엄마가 좋아할까 싶어서 명화 그리기 세트를 주문했다. 밑그림이 있고 그 위에 번호에 맞는 색깔을 칠하는 DIY세트이다. 저걸 지겨워서 어떻게 칠하나 싶었지만, 엄마는 정말 즐거워하며 빠른 속도로 완성했다. 심지어 여러 번 완성할수록 점점 더 다양한 색과 큰 그림에 도전했다. 우리 엄마도 이렇게 잘하는 게 있었는데, 나만 좋자고 다양한 취미를 쌓고 돌아다닌 것이 미안했다.
엄마가 엄마 친구분에게도 권하고 싶다고 해서 제일 작고 싼 해바라기 세트를 보내드렸다. 이모에게 사드린 것도 잊고 살았는데, 이모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에야 이모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해바라기 그림인 것을 알았다.
같은 그림이라도 같은 색을 칠했어도, 이모의 해바라기는 이모처럼 수줍고 연한 상냥한 해바라기였다. 이모가 색칠하면서 정말 즐거워했다고 들었다. 그 작은 그림을 완성할수록 얼마나 아쉬웠을까? 본인에게 쓰는 걸 아까워하니까 다른 세트를 살 생각도 못했을 텐데, 얼마나 더 구경하고 싶었을까? 오랫동안 얼굴도 안 본 나에게 그림을 완성했다고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을까?
이모는 내 동생의 결혼식에 다녀간 후 그다음 날 밤 뇌출혈로 쓰러졌다. 신부대기실에서 동생이랑 친구들이랑 떠들 때 이모가 멀리서 우리를 보고 조용히 다녀갔다고 들었다. 왜 우리를 가까이서 안 보고 멀리서 보고 갔을까 아쉽고 미안했는데, 다시는 이모를 볼 수 없다. 연한 해바라기가 마치 이모의 마지막 모습 같다.
몇 년 동안 보지도 않고 커서는 식사 한번 제대로 대접해 드린 적 없으면서, 겨우 값싼 색칠 세트 하나 보내드려 놓고 그림으로 이모를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