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의 책은 어렵다. 닿을 듯 말듯 알듯 말듯 좀체 알기 어려운 그 무엇을 담아내는 영민함을 무너뜨리겠다는 타는 의지로 끝까지 읽어내는 것이 된다. 단숨에 읽어내려가면서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의 나열들에 좌절하면서도 1987년 서울이야기가 나왔을 땐 팽팽했던 긴장감이 풀리기도 했다.
자신이 말했듯. 장르의 파격, 파괴란 이런 것일까? 어렵지만 신선하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한계를 처절하게 깨닫게 해준달까. 그런 것들에게서 흥미를 느끼는 건지. 어떤 이끌림으로 자정이 좀 안된 시각에 잡아버린 그의 책을 새벽 3시 36분이 되어서야 완독할 수 있었다.
오래 전, 까만 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을 때 처럼. 이해의 속도가 결코 눈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어려움과 난해함이 뒤섞인 폭풍우에 휩싸였다 또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를 반복하곤 끝내 마지막 책장을 덮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고전, 철학가나 사상가들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도 특히나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에게서 촘촘한 자극을 받는달까. 그 안에 가려진 것. 이면의 너머의 것을 어느 순간 보게 되는 그런 류. 묵묵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 물리가 트이는 경험. 이런 것들이 주는 위로와 통찰과 지혜를 경험하게 되어버린 덕분이다. 내가 경험한 고전의 끝은 끝이 아니라 어떤 생애의 시발이었고 그들이 주는 메시지는 하나로 귀결됐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가는, 육체라는 껍데기가 나.인냥, 나 자신인 것 마냥 살아가는 어리석음에 대한 통찰... 그 속에서 나의 내면을 보고 성장하게 된다. 인류의 기원 이래,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왔을 점철된 인간에 대한 궁금중이 집약된 것들에 관심이 있다.
휴일 오후. 이토록 게을러 터질 수가 없는 순간들. 뱃가죽이 바닥에 자석처럼 붙어버리는 순간들... 그러다가도 이 적막을 와장창창 깨고 밖을 나온다. 책이 부를 때, 글쓰기가 하고 싶을 때,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 걷고 싶을 때... 게으름이라는 고요와 적막이 깨지는 순간이란 이토록 시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을 사러 가는 일. 실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두 발을 이 대지 위에 기어코 닿고 싶은 거겠지. 이토록 시시하고 그래서 이토록 찬란할 수가 없는 바깥세상을 만끽하고 싶은 거겠지.한다.
너무 처절한 고독도, 너무 지리멸렬한 내면 세계에 대한 탐구도 바깥 세상이 없으면, 외면이 없으면 무슨 소용일까. 소용없게 된다. 내면과 외면은 하나다.
내면 세상과 바깥 세상의 밸런스란 이토록 귀여운 것일 수가 없다. 너무 침수해버릴 것 같다 싶으면 바깥 세상이 날 부른다. 그렇게 날 환기시키고 살게 한다.
현관에 앉아 운동화 끈을 묶으면서 아주 작은, 말 그대로 타이니한 갈색 나뭇잎 하나를 발견했다. 분명 산책길에 휩쓸린 채로 집까지 따라온 것인데, 실은 요 작은 것이 따라왔겠는가. 내가 데리고 온 거겠지.싶다. 흔한 나뭇잎 모양이 아니라 약간 둥근 그러나 매우 작은 것의 귀여움으로, 앙증맞음으로, 깜찍함으로 잠시 내 손바닥에 두었다. 그러곤 후.하고 날려보았다.
그 어떤 것도 귀엽지 않은 것이 없다. 실은 내가 사는 세상은, 이 지구별은 자세히 보지 않아도 온통 귀여운 것들로 넘쳐난다. 어떤 것이 귀엽게 보이지 않으면 내 마음이 귀엽지 않은 것이겠지.하고 내 안을 본다. 매력처럼 귀여움도 마찬가지다. 절로 느끼는 것. 기운이다.
귀여움이란 아름다움과도 같다. 바깥 세상으로 나온 뒤 도서관으로 향했다. 특히나 휴일 도서관 풍경은 평일의 그것보다 활기를 띤다.
어떤 세계와 어떤 영혼의 만남을 반납하고 또 다른 어떤 세계와 어떤 영혼과의 만남을 데려오는 일. 내겐 이토록 귀여운 모든 순간들이다. 확실한 건 수많은 그 어떤 세계와 영혼들과의 만남이 내게 답을 주지 않는다는 것. 그 해답은 순전히 내 영혼의 것이기에, 내 영혼의 영역이기에. 그들조차 침범할 수 없는 것이다.
대신 더 나은 질문을 하게 하고, 시선과 사유의 세계를 무한하게 확장하도록 돕는다.
모든 귀여운 것들... 그렇담 나도 귀엽고 너도 귀엽고 세상도 귀엽고 자연도 귀엽고... 모든 생애들은 이토록 귀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