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듣는 음악도 인연이다. 그날그날, 순간순간 듣고 싶은 노래들... 당연히 취향이겠고 비슷한 결이겠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진 성시경 노래를 가장 많이 듣고 있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브리트니 스피어스, 웨스트라이프, 백스트릿보이즈... 주로 R&B, 팝송, 디즈니 ost를 가장 많이 들었다.
문득 밤길을 걷다, 머라이어 캐리와 웨스트라이프의 듀엣곡, <Against all odds>가 듣고 싶어졌다. 그들의 노래는 여전히 날 위로하고 날 응원하는데,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 같은데, 시간이 이토록 흘렀다니.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았다. 등교길, 하굣길 교복입고 음악 들으며 걷는 내 모습이 오버랩됐다.
나는 정말이지 타고난 것인지 옛날 사람이라고 스스로 확신하게 되는데, 오래된 시장이나, 골목길, 간판, 노포, 가게들... 옛것이 좋고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하는 사람이라서. 이런 바이브일 때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라서다. 그래서 더더욱 나이 들어갈수록 그 시절이, 유난히 그립고 아주 자주 혼자서 추억은 방울방울.하며 미소 짓는다.
서울 할머니댁으로 해마다 명절을 쇠러왔고 아버지차가 늦은밤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올림픽대로로 진입하는 길에 들어서면, 저 멀리 보이는 높은 빌딩들과 아파트에서 비춰지는 휘황찬란한 조명들, 네오사인, 대로 옆 오른쪽엔 한강 시민공원의 주황 가로등, 한강, 서울의 밤하늘이 나를 반겼다. 중고등학교 시절 마주한 이런 풍경들은 지방 고등학생인 내게 인서울 하겠다는 동기가 되어주기에 충분했다. 내겐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다니겠어!." 이 말은 곧 "서울로 대학을 가겠어."와 동의어였다.
무언가 자기 의지를 가지고,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내 도전의 연속이었던 때는 대학시절이었다. 실패해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넘어지는 순간 바로 일어서던 때였다. 아무리 돌이켜보아도 그때였다. 그 아이가 정말 내가 맞는지.싶을만큼 스무살 그 아이는 어디로 사라진건지. 그때와 지금의 나는 어쩜 이토록 다른 삶을 살고 있는건지... 도통 모르겠는, 그 아이는 말이 없다.
지칠 줄 몰랐던 때. 꿈이 있었다. 목표가 있었다. 하면 된다는.경험을 했다. 조금만 더 일찍 자기 자신이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내적인 것들에 관하여 고민하고 고뇌하고 선택하고 경험하고 하는 그런 체험들을 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 엄마가 된다면, 무엇보다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지금의 내가 절대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있다. 남과의 비교다. 의미 없었다. 내게 이로운 것이, 유익한 것이 하나 없는 일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그 비교란 실체가 없고 허상이 아닐까.깨닫게 됐다. 남과의 비교하지 않기를 노력하면서 많은 면에서 자유로워져갔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남들이 다 알만한 대기업에 들어가는 일, 또 그것이 내 명함이 되어주는 일, 자연스레 비슷한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되겠지. 나도 엄마가 되겠지... 그 사회적 명함이 나라고 착각하며 부단히도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불행하게 했던 나날들. 그래도 무난하게 남들처럼은 살 수 있겠지.하는 그런 류의 생각과 내가 다니는 회사가 나.라는 얄팍한 생각을 했던 시절이었다.
이런 것들로 날 이뤘다보니ㅡ 이런 생각들이 날 이루었기에 그 시절의 나는 우울했고 불안했고 외로웠고 방황했다. 온 초점이 남의 시선이고 남들의 눈이었다. 나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 없던 탓이었다. 질문하지 않은 탓이었다. 사유하고 사색하지 않은 탓이었다.
퇴사를 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내 선택을 응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후회할 거라고. 이만한 직장이 없다고. 돈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쟁이 생활이 최고라고. 지금 그만두면 결혼 어떻게 하려고 하냐고... 이런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땐 왜 그랬는지. 나는 퇴사를 해야만 살 것 같았다.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나 자신을 알아가는 법을,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아주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남들의 시선이나 눈.따윈 정말이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생각보다가 아니라 사람들은 내게, 혹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그래봐야 그때 뿐이라는 걸, 혹은 관심있는 척할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여전히 나는 방황한다. 여전히 나는 길을 잃는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겐 남아있는 생.이 있다. 언제일지는 모르겠는 그래서 너무도 숭고한, 내게 주어진 자기 생.이 있다.
지리멸렬한 방황의 끝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요즘의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겉과 속이 같은 사람.
나와의 관계에서든, 타인과의 관계에서든 겉과 속이 꼭 같은 사람.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은 실은 속이 꽉찬 사람이다.
용기 있는 사람이다.
요즘 수시로 질문한다.
"너는 정말이지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인가?"
"진실된 사람인가?"
"너 자신에게조차 솔직한 사람인가?"
질문하지 않으면 나 자신을 바로 볼 수 없다.
나는 분명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고 싶다. 진실된 사람이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기로 한다.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이전에 내가 무엇이었건, 무엇이지 않았건, 지금도 무엇이건, 무엇이지 않건, 실은 모두 가짜.라고. 허황된 것이라고. 허상이라고. 어떤 조건이나 환경이나 상황으로 금세 사라질 것이라면, 가짜.라고. 없는 것이라고. 없는 것과 같다고. 마찬가지라고.
그러니 그런 것들에 기대지 말자고.
믿을 수 있는 건 오롯이 내 안의 나라고 나 자신 뿐이라고.
내가 꼭 되고 싶은 사람.
겉과 속이 같은 사람. 꼭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그 길을 나는 그렇게 씩씩하게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