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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Nov 12. 2024

예쁘다 너,

양말을 사러  매장에서 핑크색 점퍼가 눈에 들어왔다. L사이즈로 입어봤는데 넉넉하고 루즈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세일까지 해서 가격도 부담되지 않았다. 핑크색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까무잡잡한 피부라 핑크색이 내게  어울리진 않는다. 오늘은 무슨 이유에서 딸기우유색 보단 조금  짙은 그 점퍼가  마음에 들었을까.  30초간,  마음의 소비요정이 "이걸 ? 말아?" 시끌벅적했다. 끝내 사지 않았고 아쉽지 않았다. 색만 다를  비슷한 패딩이 2개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예쁘다고 덥석 사는 일이 아주 줄었다.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이곳도 들렀다 저곳도 들렀다 뚜벅이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필요한 것만 사고 돌아오는 여느날 처럼 대부분이 아이쇼핑이 되었지만. 나 혼자서는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얼마 전 심사숙고해서 고른 텀블러를 첫 개시했는데 아주 마음에 든 것. 카페에 들러 텀블러에 따뜻한 카페 라떼를 담고선 그렇게 걷다가 양말 4켤레를 사고 돌아왔다. 양말 4켤레만 사고 돌아와도 실은 이토록 만족스러운 마음이 된다.


버스를 타지 않고 집까지 걸었는데, 그렇게 한 시간쯤 됐을까. 밤하늘은 어둑하고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인적은 드물었고 도로 위 차들의 라이트가 홀로 걷는 밤길을 무섭지 않게 했다.


걸으면 평소 지나쳤던 것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나 낮보단 밤산책이 유독 선명하게 보인다. "아, 저 카페는 생각보다 일찍 닫는구나. 아, 저 식당 한 번 가봐야지 했는데 다음엔 꼭 와보자... 아, 저 길이 저기로 연결되는 거였네!..." 덤덤한 대화들이 오간다. 새벽 마켓이 열리는 천변을 지나다가는 몇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로 북적대겠지. 내일 새벽에 나올까?... 그렇게 걷다 혼잣말하다 허밍을 하다, 음악을 듣다 밤하늘을 바라보다, 내 그림자를 보다, 은행나뭇잎이 떨어진 거리에 발걸음을 내딛는 내 운동화 앞코를 바라보다...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한다.


출발한 곳과 집까지 거리 중간쯤 지났을까. 밤하늘의 달을 보다 시선을 내렸는데, 오른쪽 너머 이미 문닫힌 작은 가게의 창문에서 문구 하나를 발견했다. "예쁘다 너." 투박하게 초록색 테이프로 글자를 붙인 것인데. 이 말이 후욱 내 심장을 쐈다. 큐피트의 화살이 그대로 내 심장에 꽂혔다.


이 시간에, 이 시점에. 내 심장을 쏜 것. "예쁘다 너."

꼭 내게 하는 말 같았다.

꼭 나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았다.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몇 초가 무얼까. 그 찰나에 밤하늘로부터 내 시선을 내려놓지 않았더라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것도 우연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이 한 마디로, 이 한 문장으로 하루의 고단함, 쓸쓸함, 씁쓸함은 없는 것이 되었다.

이런 허트 어택이라면 수 백번도, 수 만번도 맞을 준비가 되어있다.

그렇게 운명처럼 다가온 이 문구 하나가 내 안에서 꽃이 되어 나를 소생시켰다.

"그래 초아, 예쁘다 너."

"무엇이 아니어도, 그 자체로 너 예쁘다."

늘 씩씩하게 살라.는 엄마의 음성도 들리는 듯했다.  

위로 되었다. 슬프지 않았다.


세상은 어쩜 사색과 사유할 것들로 가득할까.

온통 내게 알려줄 것, 가르쳐줄 것들로 가득한지.  

그 어느 것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되었다.

절로 생각하게 한다. 절로 질문하게 한다. 절로 알게 한다. 절로 깨닫게 한다.

그 끝은 늘 감사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타는 듯한 경외감, 감탄, 설렘, 감사로 마무리 된다.


예쁘다 너.

수시로 말해줄테야.

"초아 예쁘다 너."

듣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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