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피하지 않는다. 곧장 집으로 가는 날엔 혹은 집까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땐 일부러 비에 흠뻑 젖곤한다. 보슬비, 장대비가 내 얼굴에 닿는 그 느낌을 좋아해서인데 상쾌하고 시원하고 하늘과 닿는 기분이다. 자연과 하나되는 기분이다.
비 내리는 날은 늘 그렇듯 센티멘탈해진다. 멜랑꼴리함이 내 사유와 사색의 농도를 더욱 짙게한다. 진지해지기 십상이다. 혼자사는 즐거움, 1인 가구의 삶이란 시끌벅적하진 않아도 나름의 낭만과 운치와 분위기와 장점이 여럿 있다.
늦은 밤, 일찍 잠들긴 글렀구나.싶을 땐, 억지로 잠을 청하긴 보단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애쓰는 것보다 내려놓음이 잠에서도 효과적이다. 다 떨어진 생필품을 구매하면서 "나는 언제까지 혼자일 건가?"하는 물음이 일었다. 이것은 외로운 감정은 아니고 정말이지 나는 앞으로도 계속 혼자일 건가? 혼자살텐가? 혼자일까?.하는 궁금증이었다. 실은 이런 질문도 소용없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란 생각에서다.
인연은 있다. 인연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서 집착하지 않는 탓도 있다.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억지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될 일은 된다. 만나려면 어떻게해서든 만나게 되어있다.라는 생각이 혼자서의 삶을 더욱 자유롭게 한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을 때, 혼자서도 불안하지 않을 때, 혼자서 바로 설 수 있는 사람일 때, 결혼해야 안정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나 자신조차 잘 알지 못했을 때, 내가 나를 잘 몰랐을 때, 나 자신에게 질문하지 않았던 때 결혼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때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에 아찔할 때가 있다.
이십대 중후반까지만하더라도 결혼은 당연히 하겠지. 서른 초반 정도엔 결혼해서 엄마가 되어있겠지?... 결혼과 출산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서른이 넘어가니 외려 결혼은 점점 내게서 멀어져갔고 그러다 서른 중반이 됐고 그렇게 서른 후반이 되어있었다.
살아보니 그 무엇도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이 세상은, 우주는 늘 그 계획이라는 가는 길목마다 꼭 하나씩은 헤저드랄까. 함정에 빠지게 한달까. 돌아보면 그 모든 덫은 다 날 보호하기 위한 거였단 걸, 내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와 통찰을 주기 위함이었단 걸, 반드시 그 길에서 무언가를 배우게 하고 그 고개를 넘게 하려는 고도로 의도화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실은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라서 지금의 삶도 만족스럽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해야지. 연애해야지.하는 생각은 늘 있다. 주변에선 말만 이렇고 연애에 관해 아예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지만서도 나는 이토록 느긋한 아이러니가 나조차도 황당할 때가 있다.
인연이 될라면 오늘 밤에라도 어디선가 나타나는 게 인연 아니던가. 전혀 예측하지 않았을 때, 기대하지 않았을 때,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때, 정말이지 연애에 무심할 때, 내 세계로 한 낯선 사람이 훅 들어온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혼을 하기 위해 어떤 사람을 만나야지.하는 마음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 사람이 너무 좋아져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 결혼이 아닐까. 내가 할 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노력하는 것. 어제 보다 더 나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 친절한 사람이, 상냥한 사람이, 따뜻한 사람이, 성장하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닌데, 그런 사람이 내게 절로 찾아오리라는 건 욕심이다. 서로가 어디에선가 각자 자기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자기 답게,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어느 시점에 어느 순간에 마치 꼭 짜여진 각본처럼, 만나게 되는... 사랑에 어떤 환상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고 실은 사랑은 필연이라는 걸 이토록 설명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이 있다. 연애는 그런 것이었고 실은 결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인연의 궤도에 한정된 사랑을 하는 것일 뿐.
더더욱 집착할 것도 안타까워할 것도 슬퍼할 것도 외로워할 것도 괴로워할 것도 상처받을 것도 없다는 걸 이젠 잘 알게 되었다.
나이 들수록, 이십대처럼 사랑에 푹 빠지거나 통통 튀는 혹은 깜찍발랄한, 어떨 땐 요란하기까지한 생기 넘치는 사랑은 요원해진다. 할 줄 몰라서는 아닌 것 같고 확실히 기운이 소모되는 부분이 있다. 생기의 이유랄까.
그러나 분명한 건 있다. 서른 후반의 사랑 혹은 사십대의 사랑이라고 해서 결코 그 세기가 약하지 않다는 것. 세기는 결코 생기만으로 가늠될 수 없는 것이란 것도. 서른, 사십대의 사랑도 충분히 사랑스럽고 귀엽다. 두 사람 만이 간직하는 두 사람 만이 알 수 있는, 두 사람 만이 알면 되는 확인하면 되는 말들, 대화들.
나이 들어가면서, 나 자신을 알아가면 갈수록, 나 자신을 발견하면 할수록 이젠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짜 사랑.이란 상대를 힘들게 하지 않는 것. 보다 성숙된 사랑이다.
주변에서 물어보면 나는 늘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끌리셰하지만 그래서 더욱 어려운 지점일 수 있는. 대화가 잘 통한다는 건 내겐 정신세계가 잘 맞는다는 것이다. 진지하면서 웃긴 것. B급 감성을 사랑하는데 그래서인지 정신 세계가 잘 맞으면 유머 코드도 기가 막히게 잘 맞다. 정신세계가 같으면 유머 코드가 같게 되는 조화로움이 있다.
내게 사랑이란 기꺼이 하는 것. 상대를 힘들지 않게 하는 것. 상대가 힘들지 않게 내가 기꺼이 하는 것들이 된다. 마흔이 다가오려니 내 사랑에 대한 개똥 철학만 늘어간다. 이마저도 반가운 걸 어뜩하나^^ 아무렴 내 사랑인데.!하며 미소짓고 만다.
마흔의 사랑은 확신할 순 없지만 분명 이전보단 나은 사랑일 것이다. 더 성장한 사랑일 것이다. 더 성숙한 사랑일 것이다. 나도 그마만큼 조금씩 성장해왔음으로, 이젠 아주 조금 알 것 같아서.
요란한 것만이 사랑이 아니다. 내게 사랑은 매력처럼, 절로 드러나는 것이다. 상대가 절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사랑해요.라는 말보다 상대가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절로 느끼게 하는 것. 그가 느끼는 것.이 된다.
나는 내 자리에서 나의 내면을 더욱 친절하게 상냥하게 다정하게 잘 가꾸어 나가면 된다.
또 다시 누군가가 나타나면 너무 고마운 일이고 아니어도 슬픈 일이 아니다. 아니어도 외로운 일이 아니다.
언젠가 서로가 서로의 끈을 끌어당겨 그 간격을 좁혀나가겠지. 그러다 한 지점에서, 한 점에서 만나게 되겠지. 설명할 수 없는 인연의 궤도 속 그저 날 내맡기면 된다. 사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