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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도리 Jul 06. 2024

대기업 퇴사 후 3개월, N잡러가 됐습니다

기회는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구직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올린 바로 다음 날, 예상치 못한 좋은 기회들이 찾아왔다. 덕분에 하루아침에 백수에서 N잡러가 되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여느 때와 같은 평일,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할 컨텐츠를 촬영하고자 카페투어를 하고 있었다. 오늘의 동네는 망원동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커피에 대해 망원동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망원동부터 연희동까지 이어지는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에는 각양각색의 매력적인 카페들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의 카페는 23년 전통을 자랑하는 융드립 커피 전문점 '피피커피'다. 일본에서 우연히 커피꽃을 접하고는 커피의 매력에 빠져들어, 필리핀 보홀로 건너가 커피 농장을 운영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망원동에서 커피를 내리며 손님들과 소통하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이야 커피에 대한 관심이 대중적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커피 업계에 몸담아 온 분들을 보면 새삼 신기한 마음과 함께 존경심이 들곤 한다. '어느 시대에서건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은 존재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흥미로운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기분 좋은 공간에서 커피 한잔을 즐기고는 다음 장소로 이동하던 길, 핸드폰 진동이 요란하게 울린다.


'OOO 님이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 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DM(Direct Message)을 보내면 이런 알림 문구가 뜬다. '협찬이나 광고 제안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곧장 메시지를 확인했다. 팔로워가 조금씩 쌓이면서 종종 흥미로운 제안들이 단발적으로 들어오곤 한다.


내용은 훨씬 더 흥미로웠다. 유명 매거진에서 사진과 영상을 촬영/편집해 줄 콘텐츠 제작자를 찾고 있다는 내용으로, 내가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고 있는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여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자유로운 업무 방식도 마음에 들었고 이로 인해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궁금하기도 했다. 잠깐의 고민을 뒤로하고 곧장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지금은 프리랜서 일주일 차가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다 보니 그로 인해 하나둘씩 새로운 경험들이 피어오른다. 당장 대단한 수입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궁금하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프리랜서 제안을 수락하고 이틀 뒤, 저녁을 먹으려는데 문자 한 통이 왔다.


'서류 전형에 합격하여 면접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바리스타로 지원했던 한 카페에서 연락이 왔다. '이게 진짜 되는구나!' 하는 기쁜 마음도 잠시, 주 5일 풀타임이라는 근무 조건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프리랜서 업무와는 병행하기 힘든 조건이었다.


둘 다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고민을 통해 결론을 내렸다. 아쉽지만 바리스타 제안을 거절하기로 했다. '조건에 맞는 다른 좋은 자리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정중하게 거절 답장을 보냈다.


'저희가 마침 파트타이머도 채용 중에 있어요, 관심 있으실까요?'


제안을 거절하자 놀랍게도 파트타이머 자리를 제안해 주셨다.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곧장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짧은 근무 시간으로 부담 없이 일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네, 그럼 면접 보러 갈게요!'


그렇게 면접을 보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다음 주부터 카페에서 일을 시작할 예정이다. 대기업 직장인과 3개월간의 백수를 거쳐 N잡러로, 내 삶에 또 하나의 여정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문득 지난번 브런치에 기록했던 '정김경숙'님의 삶이 떠올랐다. 구글 임원에서 파트타임 N잡러로 다양한 삶을 그려가는 그녀의 인생을 보며, 나도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다짐했었다.


이번에 시작하게 될 일들이 내 인생 또 하나의 족적으로 남겨질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직접 부딪치고 경험해 가며 내가 어떤 걸 더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지 조금씩 알게 될 것 같다. 의미 있는 시간을 하루하루 열심히 채워가 보려고 한다.




어제 참으로 오랜만에 집에서 혼자 여유롭게 영화를 봤다. 보고 싶었지만 미루고 미뤄 온 '비포 선라이즈'. 스토리도 궁금했지만 에단 호크의 팬인 나에게는 꼭 봐야 할 영화이기도 했다.(극 중 줄리 델피가 너무 예뻐서 이제는 비포 시리즈를 봐야 할 다른 이유가 생긴 것 같다.)


극 중 에단 호크가 이런 말을 한다. '죽기 전에 내가 진짜 잘할 수 있는 재능이 뭔지 꼭 알고 죽고 싶어.'


로맨스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 모두의 삶은 유한하다. 유한한 삶에는 유한한 재능이 주어진다. 모든 일을 잘할 수 없고, 사람마다 더 빛날 수 있는 각자의 영역이 존재한다. 그 영역이 어떤 곳일지, 내가 어느 곳에서 가장 빛날 수 있는 사람인지 나 또한 살아가는 동안 꼭 알고 싶다.


내가 빛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알듯 말 듯 아직은 잘 모르는 단계인 것 같다. 걷다 보면 빛이 서서히 드리우는 작은 길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그 길을 찾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발걸음을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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