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모로 정신없었던 탓에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일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신경 쓸 것들이 많아서 한동안은 여유가 없었다. 근황을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될 예정이다)
다시 직장인이 되기까지 꼬박 9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직장을 찾게 된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었지만 요약해서 이야기하자면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흥미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겸사겸사, 지난 9개월의 생활을 짧게 돌아보고자 한다.
작년 4월 퇴사 이후 찾게 된 자유로운 삶. 누군가는 우려를, 누군가는 격려를 보내줬지만 모든 결과에 대한 감당은 온전한 나의 몫이었다.
퇴사 이후 2개월 정도는 흥미와 기대만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을 하지 않아 수입은 없었고, 혼자 카페투어를 다니며 콘텐츠를 만들거나 책을 읽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팔자 좋은 백수의 삶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일상을 잠시 멈추고 그동안의 것들을 비워내는 시간.
비워내면 채우고 싶어지는 법이다. 나는 마냥 놀고 싶어서 퇴사를 한 게 아니었다. '좋아하고 의미 있는 일'을 찾고, 하고 싶은 생각이었기에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이 필요했다.
퇴사 후 처음으로 도전했던 일은 파트타임 바리스타. 스스로를 사람과 커피, 카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꼭 도전해보고 싶은 직업이었다.
일은 꽤나 재밌었다. 오고 가는 손님들과 소통하는 과정도 흥미로웠고, 내가 전하는 말과 커피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소소한 만족감을 느꼈다. 정말 운이 좋게도, 처음으로 일했던 카페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더 만족도가 높았던 것 같다.
물론 아쉬운 점들도 있었다. 급여라던지,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라던지(나는 카페를 창업한다거나, 커피를 더 깊이 있게 공부해서 바리스타로서 커리어를 쌓는다던지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카페라는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서비스가 좋았던 것)
두 곳의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며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아니었다.
두 번째로 하게 된 일은 프리랜서 에디터였다. 평소 사진과 영상, 글쓰기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내게 '에디터'라는 직업이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기회로 한 회사와 계약을 맺고 프리랜서로 일을 하게 되었다. 에디터 일 역시, 충분히 재밌었다. 매주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결과물로 만드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사용자들의 반응을 보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에디터 일을 하며 기획력이나 편집 테크닉 같은 콘텐츠를 다루는 역량도 많이 성장했다.
하지만 에디터 일 역시 크고 작은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다. 클라이언트와 회사의 필요에 의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결과물을 내야 하기도 했고, 가장 아쉬웠던 것은 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기대했던 것보다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다소 수동적으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상황이 아쉬웠다. 과정은 즐거웠지만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보니 앞으로의 비전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앞의 두 가지 일 외에도 매거진 콘텐츠 촬영, 개인 계정 관리와 같은 소소한 일들을 함께 경험했다. 9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감사하게도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명확한 방향성은 아직 찾을 수 없었다. 생각이 복잡할 땐 역시 기록을 하는 수밖에. 그동안 느꼈던 나의 성격과 특징을 다시 정리해 봤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능동적으로 일할 때, 내가 만든 결과물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게 활용될 때, 정보를 가공해서 더 의미 있게 만들어낼 때, 사람들과 함께 소통할 때, 행복과 보람을 느꼈다.
적고 보니 문득, 이전 회사에서 담당했던 기획 업무가 떠올랐다. 내가 가진 특성들을 잘 살릴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쩌면 이전 회사에서 환경이 맞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 6년간 하나의 회사만 경험해 본 나로서는 환경을 비교해 볼 수 있는 대조군이 없었다.
그렇게 9개월 만에 다시 회사를 찾아 나섰다. 다만 이전 회사와는 완전히 다른 분야와 환경의 회사에 가고 싶었다. 고심하여 지원한 회사에서 감사하게도 합격 통보를 받았고, 이제 곧 출근을 앞두고 있다.
최대한 글을 간결하게 쓰고 싶은 마음에 많은 것들을 생략해서 담다 보니, 모든 일들이 너무나도 쉽게 술술 풀린 듯 보인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번 회사를 포함해서 모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 진심을 다해 지원하고 준비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며 마침내 성취할 수 있었다.(당연히 탈락한 경우도 많다)
퇴사 직후 올린 브런치 글에 누군가 남겨준 댓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즐거운 길이기를 바랍니다."
"응원하지만 도전보다 더 큰 노력은 필요할 것입니다."
사실 솔직한 마음으로, 당시에는 이런 댓글을 보고 '나는 다르겠지'하는 근거 없는 안일한 마음이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퇴사 직후에는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리게 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기대와는 다르게 주어지는 환경과 결과에 자존감은 떨어지고, 좌절을 겪게 된다.
물론 사람은 고난과 아픔이 있어야 성장한다. 하지만 그 성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힘든 과정을 고스란히 안고 견뎌내야 한다. 또 다른 결과에 다다랐을 때에야 성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퇴사 후 보낸 나름의 갭이어를 통해 정말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고, 성장했다. 30년이 넘도록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모든 일들이 지나고 나야 비로소 얻어가는 것들이 선명해진다. 과정 속에서 성취한 것들도 있지만 때로는 많이 불안했고,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환경을 어떻게 열어나가야 할지 막막하고 어렵기도 했다.
새로운 시작을 통해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많이 도전하고 부딪치며 스스로를 알아가고 다듬어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뭐가 됐든 생각하는 것들을 실천해 봐야 결과도 알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생각에 도전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며 나아가다 보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도 조금씩 다듬어지지 않을까. 이번 선택이 또 하나의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래본다.
p.s. 분명 퇴사 이후 힘들었지만,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