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두 달 전 드디어 결혼식을 마치고, 꿀 같던 신혼여행을 지나 유부남의 일상을 보낸 지 두 달이 되어간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브런치에 기록을 남길 여유가 없었다.
그보다는 좀 더 날것의 느낌으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노트북에 일기를 남겨왔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그간의 기록들을 브런치에 추려보려고 한다.
어제 오랜만에 이전 회사 동료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이제 회사 생활의 기억들이 조금씩 희미해져 간다. 퇴사 후 벌써 2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터.
그나마 가끔 이런 대소사들을 통해 동료들을 만나 그때의 기억에 먼지를 털어보곤 한다. 동기들은 어느덧 8년 차 직장인이 되었고, 나는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기 위한 2년간의 필사적인 발버둥을 밑거름으로, 이제야 입에 풀칠을 하기 시작한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퇴사 후 2년간을 정말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과 도전을 했다고 생각한다. 회사생활만 6년간 해온 30대 직장인이 밖에 나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는 없었다. 어떤 일에 도전하든 처음 하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했고, 용기만큼 따라주지 않는 여건과 보상에 남몰래 좌절하며 눈물 흘리기도 했다.
한 달에 60만 원 받아 가며 카페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운명이라 생각했던 곳과의 연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 좌절하기도 했고, 떨어지는 사회성과 자존감에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몰라 끝없는 고민에 빠져있던 적도 있었다.
자존심과 고집이 센 탓도 있지만,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내가 결정한 것들이기에,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조차 없어 혼자 눈물 훔치던 날들이 있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후회의 눈물이 아닌,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음에도 녹록지 않은 현실의 답답함을 담은 눈물이었다.
하지만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이 모든 과정들은 지금의 내 삶에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 바리스타, 에디터, 매거진 촬영, 크리에이터, 사진작가를 비롯한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며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답을 좁혀나갔다.
열심히 부딪치며 견문을 넓힌 뒤에는, 다시 좁혀나가는 시기가 필요하다. 내 에너지와 가치를 어느 쪽에 더 쏟아부을 것인가, 더 오래도록 걷고 싶은 길은 어느 쪽인가. 가지치기를 하듯 하나하나 다시 줄여나간다.
그렇게 지금은 크리에이터와 인테리어 사진작가를 겸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두 가지 일중에서도 일상의 공간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 소개하는 크리에이터 일에 좀 더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감사하게도 이제는 꽤 괜찮은 조건으로 광고와 협업 요청들이 들어오고 있다.
일이 조금씩 잘 되어가다 보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몰두하게 된다. 올라갈수록 더 높은 곳들을 바라보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되려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시야는 좁아짐을 느낀다. 한 가지 일로는 만족하기 어려운 기분이랄까.
아마 난 태생적으로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닐까. 일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요즘은 그 가지를 다시 늘려나가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아내와 새로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심고, 가지 치는 과정을 몇 번 되풀이하다 보면 비로소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 이게 나의 욕심인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매 순간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내릴 뿐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생각이 많아지는 것일까. 늘어가는 책임만큼 고민이 깊어지는 것일까. 편안함이 되려 '안주'라는 불편함으로 느껴지는 것은 내 욕심일까. 잘하고 있음에도 늘 고민을 안고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성인가 싶기도 하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었지만 퇴사 후 2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다. 이 모든 고민들 또한 건강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의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가기 위한.
비슷한 나날을 보내며 고민을 품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런 푸념의 글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