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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그 밖의 다른 것들

가재걸음 by 움베르토 에코

by 이창수

이탈리아의 소설가이자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2012년 작품 『가재걸음』 : '세계는 왜 뒷걸음질 치는가'의 제1장 전쟁과 평화, 그 밖의 다른 것들(146쪽 분량)을 읽었다.


세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을 거듭해야 하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지지만 자세히 부분 부분을 들여다보면 가재걸음처럼 뒷걸음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지성인인 움베르토 에코는 이탈리아 자국의 정치 경향뿐만 아니라 유럽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현상들을 분석하고 시대의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제1장은 세계사적인 측면을 언급하면서 전쟁과 평화에 대한 몇 가지 고찰로 시작한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중세 시대의 전쟁과 첨단 무기가 발달한 현대전은 분명 전쟁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과거에는 백병전이라고 해서 인해전술로 상대방의 고지를 점령해야 승리하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전쟁은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끌어내야 전쟁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국의 9.11 테러 사건 이후 걸프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거치면서 전쟁은 과거를 답습하는 뒷걸음을 치고 있다고 평가한다. '적은 후방에 있다'라는 말이 실감이 나듯이 전쟁의 중심은 오히려 평화롭지만 후방으로 갈수록 국지전과 전쟁의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신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으며 평화의 모호한 개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이어서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만의 평화론을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평화들은 바로 군사력의 결과물이었다" _42쪽


어디서 말이 들어본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양쪽 진영에서 날 선 공방을 이어간다. 군사력 대신에 평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평화는 군사력에 기반한다 등등의 이야기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이어진다. 세계 전쟁사에서도 분명 이런 이야기들이 반복적으로 언급되었을 것이다. 힘 있는 국가들은 패권을 정당화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 밖의 다른 것으로 기술과 과학을 언급한다. '기술에 탐닉하는 것은 과학의 실행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 과학이 아니라 마술에 영원히 의지하는 것이다'라고 과학의 진행 과정을 무시한 기술을 부정적으로 언급한다. 컴퓨터만 하더라도 사용자들은 마술과 같은 기술만을 경험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과정을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도 기초과학 연구에 들어가는 국가 예산을 대폭 감액하는 일이 일어나 사회가 떠들썩했던 적이 있다. 기초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단시간 내에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의 근간이 되는 기초 학문에 대해 투자를 결과물에만 집중했을 때 이런 오류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과학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과정'이다. 기술이 보여주는 달콤한 현상에만 탐닉했을 때 과학은 가재걸음처럼 뒷걸음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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