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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계절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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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캐슬 Sep 29. 2024

꽃무릇 石蒜


무릇

만날 수 없는 만남을 기다리다

피처럼 뿜어낸 붉은 가을

계절이 한결같지 않아

마치 더 추운 겨울을 예견하듯

예년 같지 않은 뜨거운 밤을 지새운다


뜨거움과 만남은 늘 엇갈리듯

꽃과 이파리가 만날 수 없듯

닿을 수 없는 내안 깊숙한 곳

웅크리던 뜨거운 만남은

결국 이루지 못하고

뫼비우스의 길을 걷는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의 결기를 헤아려 본다

이파리는 꽃을 만날 수 없음을 알아챘을까

이파리를 보지 못하는 꽃의 체념을 이해했을까

원인으로도 결과를 낳지 못하는 난임의 진화론

밤새 앓은 치통처럼

기다림은 면역이 되지 않는다


꽃이 져야 잎이 탄생하고

잎이 져야 꽃이 태어나는 법칙

계절이 뒤섞이면 만날 수 있겠지


9월 그런 날

새들이 서쪽으로 날아갈 때

낮이 어둠보다 무거워질 때

무릇

그대 떠난 여름을 빨랫줄에 널어 종일 말리면 보송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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