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에 있어서 시작만큼이나 마무리가 중요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실재 출산하는 산모의 태도는 종종 이를 망각하고 있는 듯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안한 마음으로 출산을 준비해 온 산모라면 기다리고 바라던 아기를 낳는다는 행복감과 자신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때 산모는 자신의 고통보다는 아기가 느낄 고통과 두려움을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아기가 출생할 때 받는 스트레스는 모체보다 7배 이상 크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좁은 산도를 빠져나오기 위해 머리가 찌그러지기도 하고, 몸이 눌리기도 하면서 처음으로 힘든 여행길을 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힘든 여행길을 엄마와 아빠가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산모는 마음으로 아기를 격려하며 애정과 용기를 주어야 한답니다. 어머니가 되는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온몸을 이완하고 조용히 호흡에 힘을 씁니다.
엄마는 출산이 아기와 내가 함께 일하는 첫 공동 작업임을 항상 가슴에 간직해야 하지요. 또한 남편과 가족은 아내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돌아보며 격려와 용기를 주고 아낌없이 애정을 표현하여, 분만이 산모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새로 태어날 아기와 온 가족이 함께 분담할 수 있는 공동 작업임을 알아야 합니다.
갓 태어난 신생아의 심리상태는 어떠할까요?
엄마의 체온이 그대로 전해지는 따뜻한 양수 내에서 생활하던 태아가 막 바깥세상으로 처음 나오면 몇 가지 갑작스러운 변화를 접하게 됩니다.
첫 번째가 온도의 변화이지요. 약 36.5 ~ 37 도의 엄마의 체온에 접해 있다가 20 ~ 25 도 정도의 대기에 노출되어도 신생아는 상대적으로 추위를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추위도 신생아에게는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게 됩니다. 따뜻한 물속에서의 수중출산은 이러한 급격한 온도의 변화를 줄여보자는 의미도 있겠지요. 이렇듯 출산하는 장소는 가능하면 실내 온도를 엄마 체온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최대한 올려주는 것이 신생아에게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다음의 스트레스는 엄마와 떨어짐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엄마와 피부가 맞닿으면서 생활해 오다가 갑자기 엄마와 피부가 떨어짐에 대한 불안감이 또 하나의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이지요. 최근에는 여러 산부인과 병원에서 아빠나 가족을 분만에 참석시킨다든지 엄마에게 신생아를 바로 안아볼 수 있게 한다든지 엄마와 신생아를 함께 생활하도록 하여 신생아가 낯섦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가능하면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외 여러 가지 스트레스는 병원에서 여러 검사와 진찰에 대한 스트레스입니다. 성인들도 피검사를 하려면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까? 하물며 신생아의 경우는 얼마나 더 불안하겠습니까? 엄마와 떨어져 있는 것만 해도 서러워 울음이 나올 지경인데 혈액을 채취하기 위해 바늘로 찌르는 것이 얼마나 아프고 무서울까? 잠이 들려하면 이 사람 저 사람이 배를 꾹꾹 누르기도 하고 청진기를 이리저리 대보는 것 또한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겠습니까?
실제로 이러한 여러 진찰과 치료를 위한 상황들은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신생아에게도 엄마 뱃속에서 들어온 음악을 들려준다든지, 엄마의 목소리나 심장박동을 들려준다든지 하면 훨씬 안락함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출산 직후에 신생아가 엄마와 bonding(결속감)이 나중에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 사회와의 결속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연구가 많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심리 상담가인 헨리 클라우드는 <변화와 치유>에서 사람이 관계성(relationship)을 형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첫 단추가 바로 결속이라고 말합니다. 올바른 결속감을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올바른 인간관계도 맺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나친 일반화 일 수도 있지만, 출산 직후 엄마와 결속감을 가진 아이들이 자존감과 자신감이 높고, 인간관계 형성에 있어서 좋은 결과를 낸다는 연구 보고도 있습니다.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아기가 출산 직후 첫 30분 이내에 엄마와 바로 격리되느냐, 모아-애착 시간을 가지느냐에 따라 결속감에서 차이가 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아기가 태어난 직후 바로 신생아실로 데려가지 않고, 엄마와 스킨십을 하며 모아-애착 시간을 갖도록 해 줍니다.
<결속감(bonding)과 인간관계(relationship)> -(2)
지난번에 이어서 출산 직후의 결속(bonding)과 인간관계(relationship) 형성의 연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출산 직후의 결속감 형성의 시간은 제왕절개술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제왕절개술을 한 경우에도 얼마든지 엄마와의 결속감을 만들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척추마취를 하는 경우라면 당연히 엄마의 의식이 명료하기 때문에, 엄마가 수술 도중에도 아기를 안아보고, 아기와 뽀뽀도 하고, 아기에게 말을 걸어줄 수 있습니다.전신마취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엄마는 의식이 없는 상태이지만, 아기를 엄마 품에 안겨주고, 엄마와 스킨십을 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엄마는 못 느끼지만, 아기는 엄마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태어나서 울음을 터뜨리다가, 엄마 품에 안기는 순간 물론 엄마가 잠들어 있지만, 엄마를 온몸으로 느껴 안심을 하고 울음을 뚝 그치게 됩니다. 매우 환상적인 경험입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제일 높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은 전년도 대비 가파르게 상승할 정도로 증가 추세가 놀랍습니다. 이는 자연출산을 많이 하는 나라들의 자살률이 낮은 것과 비교했을 때, 출산 직후에 엄마, 아빠와의 결속감의 결여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극단적이 논리일 수도 있겠지만, 자연출산과 마찬가지로 제왕절개술 이후라도 엄마, 아빠와의 첫 결속감이 자살률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속감의 결핍은 성장 과정이나 그 이후에도 정신적 문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받아야 하고 행복한 미래를 계획해야 할 아이들이 생을 포기하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대부분의 원인은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은 심리적으로 고립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타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자아와 연결성이 없는 상태가 되어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고립되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번째로는 출산 때부터 엄마와의 결속 또한 인간관계 형성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하나 자녀가족의 문제점입니다. 형제가 함께 사랑을 공유하고 자라야, 양보와 배려를 배우게 되고 가족, 나아가서는 사회를 배울 수 있는데, 하나 자녀가족인 경우에는 이러한 결속을 배움에 모자랄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형제를 만들어주는 것 또한 중요한 부모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출산은 자연출산이든, 제왕절개이든 관계없이 젠틀버스(Gentle birth)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젠틀버스를 경험한 산모에게 기대되는 것은 성취감과 인내력입니다. 짧게는 수 시간, 길게는 하루, 이틀에 걸리는 진통을 견디고, 자신이 태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과 시점까지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나올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주고, 아이를 맞이한 산모는 이후의 육아에 있어서도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견딜 수 있는 인내력과 불굴의 의지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사실 성과지상주의와 학벌 사회의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엄마가 아이의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천부적인 능력과 재능을 찾아낼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출산할 때 어떠한 약물과 도구를 이용해서 자연스러운 진통 과정을 피해 쉽게 출산을 하였던 것처럼, 육아 때에도 빠른 성과를 위해 어떤 특별 과외라든가 다른 방법들을 또 이용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하지 못하고, 엄마나 다른 방법의 도움으로 성취를 하는 아이들은 성취감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자연 출산을 통해 아이가 자신의 본능과 능력으로 엄마의 좁은 골반과 산도를 헤치고 나온 것을 체험한 엄마는 좀 더 아이를 기다려 줄 수 있고, 결국 아이가 스스로 어떠한 결과를 냄으로써 아이에게 성취감을 맛보게 해 줄 수 있는 데 유리한 면은 있습니다. 엄마가 빠른 결과를 위해 아이의 힘이 아닌 다른 방법을 사용한 경우에는 아이는 결과에 대한 성취감이라는 감정을 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이가 조금 늦게 말을 하거나, 계산능력을 조금 늦게 배워도, 아직은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때가 되면 아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에서 자신의 진정한 자리를 찾아, 꽃 피울 것을 기다려 줄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