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 시리즈 | 완벽주의 탈출기|
호주 워홀을 위해 한국을 떠난 나는 멜버른 써던 크로스역에 첫 발을 내디뎠다. 몸 만한 핑크색 30인치 캐리어 하나를 끌고, 백팩을 멘 채. 남반구 9월의 차갑지만 봄을 알리던 공기를 느끼던 나를 설레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워킹홀리데이라는 이름에 맞게 일(working)이었을 수도 있고, 휴식(holiday)이었을 수도 있다.
여러 설렘의 요소 중 나를 제일 기대하게 만들었던 것은, 내가 여기서 만날 사람들이었다. 멜버른에 도착한 첫날, 나는 백패커스에 체크인을 하고 저녁에 바로 언어 교환 모임에 갔다. 나 같은 외국인들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으로 말이다. 첫날의 언어 교환 모임을 시작으로, 호스텔, 다양한 모임, 교회, 일했던 가게 등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집이라는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룸메이트 및 홈메이트와도 가깝게 지냈다. 새롭게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로도 설레고 즐거웠고, 함께 함으로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 세상이 넓어지는 것에도 만족감과 재미를 느꼈다.
라틴 음악이 나오는 페스티벌에도 가고, 파티도 하고, 해변에도 가고, 재미 삼아 카지노도 가보고, 함께 마켓에서 장도 보고, 운동도 하고, 쇼핑도 하고, 맛집도 가고, 영화도 보고, 새해 불꽃 축제도 가고, 함께 요리도 하는 등 일상을 함께 공유했다. 호주 워홀 생활을 끝나고 한국에 가서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며, 그들의 나라에 놀러 갈 때는 그 집에서 자고, 한국에 놀러 온다면 우리 집에서 재워주는 것을 생각했던 것 같다.
호주 안에서 지역 이동을 할 때까지만 해도 호주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간간히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호주 이후의 삶에서도 함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은 나이가 지금보다도 더 어려서 그랬던 것일까? 또는 순간순간이 행복해서 그랬던 것일까? 몇 년이 지난 지금, 핸드폰 사진앱을 열지 않으면 희미한 추억 속의 친구들에게 선뜻 연락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SNS에 올라오는 친구들의 소식에 연락을 했었을 때도, ‘좋아요’로만 돌아오는 답을 받았다. 이런 일로 과거의 추억을 나만 생각하는 것만 같아서 이후로는 먼저 연락하려 하지 않았다.
어떤 추억이 있었길래 관계와 우리가 함께 하던 순간들을 이리도 소중히 여겼고, 여기는 것일까?
외국인 친구들로 말하자면, 한국인 간에 느낄 수 있는 것만큼은 깊은 정이 들기는 어려웠다. 이것에 대한 원인은 사실 아직까지도 잘 모른다. 개인주의 등과 같은 문화 차이로 인해서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고, 영어 사용에 자신감이 떨어진 경우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아끼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하는 외국인 친구들과 깊은 정이 들기 어려웠던 원인은 조금 다르다. 내가 만난 친구들은 대부분 워홀러이자 여행자였다. 따라서 우리는 호주라는 땅에서 친구들을 고향으로 보내주거나, 지역 이동 등을 통해서 많은 이별을 겪었기에, 함께 하는 관계의 깊이까지는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별에 무뎌질 수는 없었다.) 그들과 깊은 정이 드는 것은 어려웠지만, 아이러니하게 그들의 따뜻함에 스며들기는 쉬웠다. 경상도 출신의 내가 익숙했던 것은 말은 다소 투박하고 때로는 거칠어도, 따뜻한 행동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외국인 친구들의 경우는 달랐다. 행동은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만 하지만, 진심이 묻어난 따뜻한 말을 하였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그들에게 점점 익숙해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들과 서로 스며들며 편안하고 즐거운 관계가 되었다.
한국 친구들로 말하자면, 영어로는 의미를 정확하게 나타내기 ‘정’이 들었다. 나에게 부탁도 잘하고, 나의 부탁에도 흔쾌히 승낙하며 오가는 마음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마음들.
호스텔에서 만난 나보다 나이가 20살 가까이 많던 언니가 있었다. 같은 방을 2주 정도 쓰면서 새벽까지 많은 대화도 했고, 내가 토마토를 많이 사서 나눠줬을 때의 고마움을 또 다른 과일을 주는 것으로 보여줬다. 멜버른에서 시드니로 지역 이동을 생각할 때, 나에게 장난 삼아 가지 말라며 한식을 푸짐하게 차려줬던 언니. 짧은 만남이었지만, 기억이 선명하다. 한국번호는 알지 못하고, 언니의 호주 번호는 해지가 되어서 지금은 어느 나라에 있는지도 알지 못하지만 함께 했던 감정과 정은 생생하다.
그리고 내가 애정을 느꼈던 여러 한국 사람들 중에서, 호주 워홀 후 몇 년이 지나며 점점 더 가까워져서 지금 주 6일 영상통화하는 언니도 있다. 호주 워홀을 통해서 마음과 가치관이 통(通)하는 소중한 인연을 얻게 된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따뜻함에 스며들게 해 준 외국인 친구들, 한국인의 정이 무엇인지 보여준 한국 친구들과 함께 했지만, 현재를 함께 보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지금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한 때는 함께 지내며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웃고 울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현재의 일상을 SNS를 통해서 알게 되더라도 연락이 머뭇거려지거나 일상조차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 하지만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과거에 머무르는 인연이라는 사실에 아쉬움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쉬움은 좁은 시야로 이어졌다.
‘좋은 관계라는 것은 현재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잘못된 신념으로.
나의 이러한 신념은 과거, 현재, 미래를 날려버리는 듯했다.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던 과거를 부정하고, 현재를 온전하게 살게 하지 못하며,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게 만드는 것.
지난 과거에 매여있는 사람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힘든 현재로 인해서 과거가 미화되어 아름답게만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 정도로 자신에게 큰 울림을 줬던 과거이기에 빠져나올 수 없는 마음.
하지만 과거를 추억으로 인정하며 때로는 아련하고 애틋하고 그리운 마음으로, 때로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아름답게 바라볼 때, 현재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충실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를 현재로 가져오려는 노력은 방금 져버린 여러해살이 꽃을 지금 당장 피게 하려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날씨, 꽃이 견딜 수 있는 상황 및 조건이 맞추어진다면 다시 필 꽃은 다시 피고, 새로운 봉오리에서도 꽃이 필 것이다. 그러니 꽃이 져버린 모습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필 꽃을 기대해 보는 것을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