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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Jun 15. 2024

미래 간접체험 feat 노후

챗지피티에 관련된 글이 알고리즘의 수혜를 입었는지 말도 안 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조회수가 많으니 덩달아 댓글도 많이 달렸는데, 글을 쓰지 않을거면 가입할 필요가 없는 브런치 계정으로 댓글만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왕 오신 김에 내가 어떤 글을 써왔는지 봐주시면 좋았을텐데. 그럼 이 사람이 왜 이런 글을 썼는지 알았을텐데. 글에서 전망한 내용이 그대로 댓글로 달려서 내 부정적인 전망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최근에 수술로 인해 지난 한 달을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만 있으면서, 인력이 AI에게 대체된 후의 삶을 간접체험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고, 살 집이 있다는 가정 하에서의 미래 체험이다. 노후 준비가 된 은퇴 후 삶에 대한 간접체험이라고 쓰려다가, 연금보험도 없는 주제에 무슨 은퇴 후 삶이냐는 생각에 제목을 바꿨다. 


운동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운동 없는 삶을 상상해본 적도 없다. 운이 좋게 나는 큰 수술을 받은 적도 없고, 어디가 부러진 적도 없다. 그래서 운동을 반강제적으로 쉬어본 적이 없다. 크고 작은 부상은 당연히 있었지만, 손목이 아프면 하체운동을 했고, 무릎이 아프면 상체운동을 했다. 구기종목을 싫어하는 내가 구기종목만이 허락된 초중교때 했던 운동은 태권도와 춤이다. 교육열이 넘쳐 흐르는 어머니가 나를 여러 학원에 보냈지만 내가 가장 오래 다녔던 것은 미술학원과 태권도다. 둘다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어머니가 강제적으로 그만두게 했다. 다른 학원들은 가기 싫다는걸 어머지가 억지로 등을 떠밀었는데, 두 학원은 가지 말라고 어머니가 말리신 격이다. 어렸을때부터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고 '혼자하는' 운동을 좋아했던 것 같다. 태권도장을 오래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겨루기의 비중이 매우 낮다. 투기보다는 체조에 가까운 커리큘럼이다. 고등학교때 웨이트를 시작했고 대학교때는 복싱을 했다. 복싱은 실력이 늘수록 스파링의 비중이 높아지긴 하지만, 역시나 혼자 훈련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 후 서핑과 역도로 이어졌다. 


40이 되기 전에는 새로운 운동을 접하면 '이 수준까지 가고싶다'라는 목표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목표지향형 인간인 나는 운동을 할 때 목표부터 만들고 시작하는 거다. 하지만 노화가 무엇인지 알게 된 후 새로 시작한 운동에서는 이전과는 다르게 전혀 다른걸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번째는 '어떻게 부상을 당하지 않고 이 운동을 할까'를 제일 먼저 생각했다. 금방금방 낫던 시절에는 부상이 그렇게 큰 이슈가 아니었다. 이젠 어딘가를 다치면 완전 회복으로 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딘가가 아프면, 좀 쉬면 낫겠지 가 아니라, 온전한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노화는 그런 것이다. 그러다보니 두번째로 생각하는 것이 '내가 이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이다. 하필 내가 노화가 시작된 후 시작한 새 운동이 역도이고, 역도는 고중량을 다루는 스포츠다. 노화가 시작되면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줄어든다. 테스토스테론은 근성장에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근육량이 늘어야 중량이 늘어나는데, 근육량을 늘리기 힘든 나이에 역도를 시작한 거다. 이런저런 불리함 다 따지면 이제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이젠 운동을 하면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게 아니라 '언제까지 즐길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게 당연한 것이 되었다. 


언제까지 즐길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서 운동을 하면, 운동이 재밌어질수록 걱정이 커진다. 아이러니 하지 않나. 운동이 너무너무 재밌으면, 오히려 걱정이 늘어가는 거다. 이 재밌는 걸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안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수술을 받게 된거고, 한달간 강제로 휴식을 취하게 된 거다. 그러니 생각 많은 나라는 인간은 이 기회에 운동 없이 내가 얼마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나는 노환으로든, 병환으로든, 운동을 못하게 될 것이다. 일도 마찬가지다. 나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서, 우울과 불안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일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글을 쓰려면 쓸 수 있는 컨디션이었지만, 이참에 아예 일도 쉬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바야흐로 미래체험인 것이다. 


내일이면 4주다. 무려 4주간 일을 하지 않았고, 운동을 하지 않았다. 술도 마시지 않았고,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오로지 오롯이 집에서 4주를 보냈다. 시작은 비참했으나, 결과는 처참하지는 않았다. 운동을 못해서 오는 스트레스가 정말 컸다. 이제는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근육이 굳어버리는 나이가 되었다. 몸이 조금 나아지자 마자 스트레칭을 매일 해줘야 했다. 요즘 운동 메타는 수동적이고 정적인 스트레칭으로는 유연성이 증가되지 않기 때문에 마치 웨이트를 하듯이 스트레칭을 해야한다는 추세다. Pail과 Rail인데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보시길. 하지만 이 또한 격한 운동에 속하니, 그냥 정적인 스트레칭만 했다. 그러니 유연성이 나아지질 않았다. 앉는 것도 힘들고 손을 들어 올리는 것도 힘들었다. 요가는 괜찮으려나 싶은데 전문가가 아니라 모르겠다. 내가 해봤던 요가는 정말 말도 안 되게 힘들던데, 그건 격한 운동에는 속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일을 안 하는 것은 예상했던 대로 너무 힘들었다. 끊임없이 일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고, 참지 못하고 시나리오에 손을 댄 적이 있다. 인간은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인생은 너무 무료하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시간을 쓰기 위해 책을 읽고 게임을 했다. 슈퍼마리오 시리즈는 다 깨버렸기 때문에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라는 아주 오래된 게임을 했다. 나는 게임에 대한 역치같은게 있는지, 2주가 지나자 게임을 더이상 하기가 싫어졌다. 그럴 때에는 책을 읽었고, 책을 읽다가 다른걸 하고 싶으면 다시 게임을 했다. 자꾸 일을 하려는 나를 억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독서나 게임보다 일 하는게 더 재밌다! 하지만 실험을 계속 진행시키기 위해 재미가 없어도 게임을 했고, 독서를 했다. 그렇게 4주가 흘렀다. 독서와 게임이 즐겁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간을 보내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게임을 하는 걸 싫어했던 이유가 별로 재미도 없거니와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 때문이었다. 독서는 그래도 지식과 교양이 쌓인다는 느낌이 있지만, 세상을 구하기 위해 시간을 거스르며 트라이포스를 얻어야 하는 게임을 하면서 내가 무언가를 배우는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무언가를 더 배우고, 더 성장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퇴화해가는 나의 몸과 뇌를 추스리며 넘쳐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터다. 그럴 때 게임이 좋은 옵션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재미는 없지만, 시간은 간다. 그래서 결과가 처참하지는 않다고 표현한 거다. 


실험은 끝났다. 나는 다시 매일 운동하는 삶으로, 운동 후 시나리오를 쓰는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실험으로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운동도 못하고 일을 못해도 어떻게든 살아는 진다. 정신병에 걸려 지하철 1호선으로 가게 될까 걱정했지만, 그 정도 수준은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죽을 때까지 다 쓰지 못할 돈을 가지고도 왜 일을 하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쁘지 않은 4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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