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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Aug 15. 2024

집필 스트레스  VS 집필 후 우울감

새로운 시나리오를 완고했다. 시나리오를 쓰다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작가들마다 저마다 다른 형태의 리츄얼이 있을 것이고, 각기 다양한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다. 나는 글을 빨리 쓰는 편이고,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면 스트레스 받을게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많은 아이디어 중 하나를 고르는 것도 스트레스고, 내가 고른 아이디어가 내 시나리오에 최적일까 의심하면서 집필을 계속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그래서 다음날 이전까지 썼던 내용을 보지 않는 리츄얼을 만들었다. 난 시나리오가 완성되기 전까지 처음부터 지금까지 쓴 내용을 읽지 않는다. 그럼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보지 못한다던가, 맥락이 맞지 않을 수 있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9편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내린 결론은 상관 없다이다. 시놉시스를 정리하면서 이미 머릿속에 흐름이 완성되기 때문에, 놀랍도록 상관이 없다. 


집필하면서 받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것이 마땅히 없다는 것이다. 예전엔 술을 진창 마셨지만 이젠 술도 마시지 않는다. 운동, 독서, 영화 가 남는데 나는 집필할때 글과 영화 컨텐츠를 보지 않는다. 영향을 받는 것이 두려워 집필 기간동안 독서와 영화감상을 하지 않으니 스트레스 해소의 큰 축 두개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글을 쓰고 있으니 책이 직접적인 영화를 줄 것이고, 영화 시나리오를 영화적으로 사고하여 쓰고 있으니 영화를 보는 것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광고회사 다닐 때에도 레퍼런스 가지고 오라는 소리를 백번 듣고도 백번 가져가지 않은 곤조의 사나이다. 지금도 영화 미팅을 할때 레퍼런스 질문을 받으면 딱히 없다고 한다. 남는 것은 운동 뿐이라서 내가 운동에 더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집필이 끝나니 우울하다. 나는 집필할 때보다 집필이 끝나면 타격이 큰 것 같다. 집필이 너무 고통스럽고 스트레스가 큰 사람이라면 집필이 끝나고 해방감을 느끼고 뛸 듯이 기쁘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집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 것 같다. 집필이 끝나고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독서와 영화감상이다. 당연히 행복하지만, 그 행복감이 책 몇 권을 갈 것이고 영화 몇 편을 가겠는가. 차라리 독서와 영화감상을 안 해도 되니 집필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좋아하는 작가 중에, 아니 좋아했던 작가 중에 본인이 썼던 위대한 작품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품을 계속적으로 쏟아내는 작가가 있다. 전성기는 지난지 오래고 새로 나오는 소설들은 소재만 다를 뿐 구조가 똑같다. 문장들도 점점 비슷해져서 신간이 나왔는데 내가 읽었던 건가 착각이 드는 지경이 되자 그만 그를 놓아주었다. 본인이 만든 작품의 위대성을 뛰어넘는 작품을 쓰려고 노력하지 않고 왜 계속 비슷한 소설을, 그것도 점점 질이 떨어지는 소설을 내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이젠 알 것 같다. 그는 집필을 하지 않으면 우울해지는 사람이리라. 그래서 남이 읽던 말던 계속 쓰는 것이겠지. 감독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몇 있다. 위대한 영화를 찍었거나, 엄청난 흥행을 했던 영화를 찍었던 사람인데, 쉬지 않고 일을 하며 고만고만한 자기복제 영화만 찍어내는 감독들. 그들이 부럽다고 느낀다는 건 나에게 기회가 주어지면 비슷하게 될 공산이 크다는 걸까.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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