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욕망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욕망이 캐릭터를 결정한다. 하수상한 시대에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참군인이 되고 싶은 것도 욕망이고, 껍데기 뿐인 대통령을 치고 본인이 최고 권력자가 되고 싶은 것도 욕망이다. 이 두 욕망이 충돌하는게 너무 매력적이기에 서울의 봄은 천만영화가 되었다.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욕망이 필요하고, 이 욕망은 일관적이어야 한다. 일관적이지 않은 캐릭터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걸러진다. 전두광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으면 얼마나 영화가 우스워지겠나. 관객들은 뭐 이딴 영화가 다 있냐고 비난의 댓글을 도배할 것이다. 모순된 욕망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 한다.
정치적인 글이 아니니 흑백논리를 들이댈 생각은 하지 말길 바란다. 북한 얘기만 나오면 바로 정치 딱지를 붙이는 행위를 멈추시라. 나는 통일주의자이고 반전주의자지만, 북한에 한해서는 전쟁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적화통일도 통일이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책 한권이 필요할 정도로 분량이 길고, 아주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그 얘길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정치는 종교라 이미 정치적 스탠스가 확고한 사람과 정치적인 토론을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지 오래다. 그러니 내가 스스로 내 정치관에 대해 얘기할 일은 아마 죽을때까지 없을 것이다. 나는 모순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평양에 무인기가 들어가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부는 강경대응이다. 한 편에서는 정부를 비판하며 반전을 외치고, 한 편에서는 강경대응을 옹호한다. 여기까진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어떤 쪽이 강경대응을 옹호하는지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확전'을 옹호하며 강경대응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 주가 보다 전쟁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렇게 써야 캐릭터가 일관된다. 만약 서울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쓴다고 한다면 평양에 무인기가 침투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격노해서 반전을 외치며 정부를 비판해야 욕망이 일관된다. 전쟁이 나면 부동산은 껌값이 된다. 서울은 휴전선에서 6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대포를 쏘면 맞을 거리다. 전쟁이 시작하자 마자 보병이나 전투기가 오기 전에 이미 포가 먼저 서울에 떨어진다는 소리다. 전쟁 시작하자마자 서울은 초토화다. 청와대, 국회, 기재부, 국방부, 외교부, 모든 나라의 대사관이 서울에 있다. 남한과 전쟁을 벌이는 나라의 지도자라면 당연히 서울부터 수복시키려 할 것이다. 근데 만약 그 서울이 60km밖에 안 떨어져 있다면? 모든 가용할 자산을 동원해 서울에 포탄을 쏟아붓겠지. 미사일이 아니다. 포탄이다. 요격미사일로 못 막는다. 이건 사실 태어날때부터 지금까지 분단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들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재밌게도, 서울에 부동산을 가진 사람들이 강경대응을 옹호한다. 시나리오였다면 칼질을 당했을 것이다.
나는 북한 이슈가 있을때마다 벌어지는 이 모순이 흥미롭다. 어떻게 서울에 부동산을 가진 사람이 강경대응을 옹호할 수 있는지. 금리 오르는 것에 벌떼같이 달려들고 주택담보대출을 조이려고 하면 혁명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 사람들이 전쟁을 하자는 소리에 환호한다. 나는 세상의 아이러니를 보는 사람이고, 아이러니만 찾는 사람인데, 이건 내가 아는 아이러니 중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다. 그래서 보고싶긴 하다. 실제 전쟁이 벌어지면 그들은 뭐라고 할지. 한 평생 모든 자산이 집중된 자신의 부동산이 제로가 되는 현상을 목격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창작자로서 궁금한 인간의 반응이다.
글 마지막에 허무하게 덧붙이자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게는 전시작전권이 없다. 그래서 다른 나라를 침략할 수 없다. 패전국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라고 무시하곤 하는데 사실 우리도 없다. 엄밀히 말하면 전쟁을 선언할 수는 있겠지만, 전쟁을 선언하는 순간 우리나라 대통령은 군 지휘권을 잃는다. 한마디로 전쟁하자고 해놓고 군대를 못 보내는 것이다. 그러니 확전이나 강경대응 이런말 해도 신경쓸 필요 없다. 북한도 절대 우리나라를 침략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가진 권력자가 모든 것을 잃을 짓을 할 리가 없다. 역사가 증명한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전쟁을 일으키는 바보는 없다. 그것도 자기보다 100배 강한 상대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