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류학자 Jul 22. 2023

순천의 두루미들

탐조 이야기

대과거의 기록 :)


2015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고 스무 살이 되었다.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새만 보고 있다. 새벽 6시, 일찍이 일어나 순천으로 향했다. 며칠 전 내린 눈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옅은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눈을 녹였다. 순천은 제법 가까워 금세 도착했고 장 선생님의 지인께서 나와 계셨다. 함께 꼬막 정식을 먹으며 따뜻한 식당에서 몸을 녹였다.

  이곳에 온 목적은 흑두루미를 보기 위함인데 재두루미와 검은목두루미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다 천연기념물에다가 멸종위기 종으로 특정한 곳 외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순천만에서는 한 번에 세 종, 잘하면 그 이상도 볼 수 있다.

  두루미와 같이 덩치가 큰 친구들은 쉽게 도망가고 거리를 잘 주지 않기 때문에 차를 타고 관찰하거나 두루미 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기다려야 한다. 일단 후자를 택했다. 새를 보기 위해 만들어진 관찰대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2시간 정도를 기다리기로 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필드스코프를 쓰니 종 구분이 가능했다. 흑두루미(천연기념물 228호 멸종위기 2급) 340마리 재두루미(천연기념물 203호 멸종위기 2급) 30~40마리 검은목두루미(천연기념물 451호 멸종위기 2급) 3마리였다. 그 모두가 가까이 붙어 있는 건 아니고 가족 단위인 3~4마리 정도가 함께 다니며 그 무리가 모여 커다란 군집 형태를 보였다.


흑두루미 어린새와 성체가 함께 다닌다.
흑두루미(뒤) 사이에 검은목두루미(앞) 3마리가 보인다. 눈이 와서 분위기가 즥인다.


  이곳에는 두루미를 위해 사람의 접근을 막고 먹이를 공급해 준다고 한다. 두루미들은 가족 단위로 다니다가 먹이가 공급되면 일사불란하게 그곳으로 집결한단다. 너무 많은 두루미가 한 번에 모였고 싸우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그 긴 부리를 치켜들고 돌격하는데 난장판이었다. 새끼는 부모와 털의 차이로 구분할 수 있는데 부모에게 움직이자고 보채는 것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먹이를 먹고 자리를 옮길 때에는 그 자리에선 바로 날지 못하고 조금 달려서 추진력을 얻었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차를 타고 움직이기로 했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가까이에서 녀석들을 볼 수 있었다. 때마침 비가 눈으로 바뀌었고 경이로움이 연출됐다. 한참 두루미를 보던 중 배고픔이 저녁시간을 알렸다. 근처 식당에서 다 함께 저녁을 먹고 인사를 건네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팔색조 보전 연구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