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많이 먹니
팔색조가 번식기에 구성하는 행동권 (home range)의 크기가 주요 식단인 '지렁이'의 풍부도와 관련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준비해 보았다. 둥지 주변에 지렁이가 많다면 그 주변에서 먹이를 구해 새끼에게 먹이면 되지만, 지렁이가 적은 경우 시간을 더 투자하더라도 멀리까지 나가 먹이를 구해야 할 것이라 예측했다. "다른 먹이로 대체하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종과의 경쟁을 생각한다면 쉬운 길은 아닐 것이다. 지렁이 사냥을 잘하는 팔색조에겐 오히려 <장거리 지렁이 구하기 여정>이 더 쉬운 선택지가 될 수 있겠다.
이를 위해 크게 5가지 숫자가 필요했다.
1. 새끼가 소비하는 지렁이의 수
2. 부모가 번식 기간 동안에 소비하는 지렁이의 수
3. 번식지의 지렁이 밀도
4. 1-3을 고려해 계산한 예측되는 행동권 크기
5. 실제 팔색조의 번식기 행동권 크기
최종적으로 4번과 5번을 비교하여 비슷하다면, 제시된 가설을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은 1과 2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새끼가 소비하는 지렁이 숫자를 파악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었다. 일단 갖고 있는 데이터 안에서 그 숫자를 파악할 수 있었고, 이미 발표된 몇몇 논문들도 그 숫자를 언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데이터는 구멍이 있었고 이를 메꾸기 위해 대략적인 값을 예측해야 했다. 이런 숫자 파악에 있어서 계산의 세분화는 그 정확도를 높일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에 그렇게 많은 데이터가 있지 않아서 오히려 실제값과 떨어진 값을 도출할 있겠다고 생각했다. 추후에 논문 심사 단계에서 리뷰어가 지적한다면 수정을 고려할 수 있기에 계산의 단순화 방향으로 정했다. 결과적으로 팔색조 새끼들은 부화 이후 둥지를 떠나기 전까지 대략 1000마리의 지렁이를 먹어치웠다. 이 숫자는 이전에 보고된 결과와 유사했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
부모가 번식 기간에 소비하는 지렁이의 수를 파악하는 것은 정말 답이 없었다. 일단 부모 식단 연구가 전혀 돼있지 않았다. 멸종위기 종이라 숫자가 적어서 보기 어렵다는 점은 둘째 치고, 새들의 사냥 장면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산새는 여러 장소를 옮겨가며 사냥을 하고, 언제 어디서 사냥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최근 적용하는 방법은 똥에서 추출한 DNA 혹은 동위원소 분석으로 식단 비율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방법들 역시 하루 종일 쫓아다니며 분석에 사용할 시료를 수집하지 않는 이상 완전한 정보를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마주한 문제를 보느라 시야가 좁아져 주변을 미처 살피지 못했다. 이런 대학원생에게 교수님은 역으로 계산하자는 대안을 주셨다. 이전에 연구를 바탕으로 팔색조 몸무게를 고려해 번식 기간 동안 지출하는 칼로리를 계산하고 팔색조가 사냥하는 지렁이의 평균 칼로리를 알아낸다면, 부모가 먹는 지렁이 숫자를 계산할 수 있을 것이라 하셨다. 거기다 지렁이가 차지하는 식단 비율을 모르기에 대략 10, 20, 30, ..., 90%인 상황에서의 필요한 (먹어야 할) 지렁이 숫자를 계산하여 여러 경우를 고려하고자 했다.
요약: 팔색조 부모와 새끼가 지렁이를 얼마나 먹는지 계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