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는 연구 결과를 다른 과학자들 앞에서 발표하는 자리다. 2019년 봄이 시작되던 날, 한국생태학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다른 과학자들을 만난다거나, 나의 연구를 보여주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과학자의 자세보다는 학위 과정을 무사히 마치는 것에 더 무게를 두었기에, 그냥 포스터만 붙이고 돌아갔다. SICB (Society for Integrative and Comparative Biology)에서 진행하는 학술대회도 참가했지만, 비대면으로 진행한 터라 별다른 감흥은 얻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연구자료를 정리해 둔 외장하드가 나름 빵빵해진 올해, 과학이 매우 재밌어졌고 계속 연구를 하고 싶어졌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연구도 궁금해졌다. 연구와 미래에 대해 고민이 줄지어 오는데, 해답 혹은 힌트를 얻고 싶어 진화학회와 조류학회에 참가했다. 먼저 진화학회 후기부터.
한국진화학회는 최근에 생긴 신생학회였고, 다른 학회들과 함께 정기학술대회를 진행했다. '진화' 학회이기에 새의 조상인 공룡에서 시작된 비행 깃털의 진화에서 피식자의 역할에 대해 발표하고자 했다. 제한된 시간으로 구두 발표를 할 수 있는 인원이 많지 않아기에, 초록을 평가한 후 발표자를 정한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발표할 기회를 주셨다.
야금야금 준비하다 보니 금방 학회 날짜가 됐다. 같은 연구실 동료들과 KTX를 타기 위해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8월임에도 불구하고, 태풍의 영향으로 덥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리고 택시를 타고 강원대학교 근처에 도착하니, 저 멀리 교수님들과 학생분들이 보였다.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기념촬영을 하고 기념품을 잔뜩 챙겨 받았다. 그랬더니 가방이 들고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고 부피가 컸다. 그때 번뜩! 선배의 포스터가 붙어있는 칸막이 뒤에 숨겨두면 되겠다는 기가 막힌 전략이 떠올랐다. 진행시켰다.
발표는 다음날이었기에 다른 분들의 발표를 먼저 들었다. 특히 외국에서 오신 소위 '대가'라고 불리는 연구자분들의 강연은 만족스러웠다. 좋아해서 하는 연구도, 너무 집중(집착)하다 보면 지칠 때가 있다. 그리곤 좋아해서 시작했다는 사실을 까먹을 수 있다. 내가 작년에 마주했던 상황인데, 다른 분들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사건 이후 방어 프로토콜을 구상했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좋아해서 하는 연구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긍정적 효과를 증폭하는 데에는 자신의 연구에 미친 과학자를 만나거나 그분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학회에 온 목적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이곳 한국까지 찾아오신 외국인 과학자분들, 나이가 지긋하심에도 지치거나 질려하는 기색 없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웃음을 내비치는, 그러한 사람들이 전해주는 연구이야기는 힐링 그 자체였다.
첫날 일정이 끝나고 다 같이 뷔페에서 밥을 먹었다. 하루종일 듣기만 했는데도 배가 엄청 고파서 전투적으로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진화학회 사람들끼리 간단히 술자리를 가졌다. 하하 호호 소리 사이에 흐르는 친해지고 싶지만 아직은 어색한 공기 속에서, 나름 한 마디씩 해보려고 노력하는 덕분에 대화는 이어질 수 있었다. 건너 건너 들었던 분들도 소개받아 유익한 시간 그 자체였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 2번째 순서로 발표를 해야 하기에, 먼저 인사드리고 일찍이 숙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