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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나무 Jul 29. 2023

불안을 선택하는 용기 3화

우울증을 넘어 조울증이라니

  우울증이라는 황당함을 널리 알리기도 힘들지만, 그렇다고 말을 안 하고 혼자만 간직하기도 갑갑해 미칠 노릇이었다. 그래서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내 상태에 대해 알리기 시작했다. 소식을 듣고 많은 분이 손을 내밀었다. 남편은 자신이 아이들을 보면 되니 어디 먼 곳으로 며칠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띠동갑 나이 차 내 남동생은 즐거운 일이 있을 테니 누나는 몸만 나오라며 본인 차로 먼 곳으로 데려가 즐거움과 해방감을 느끼도록 해주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동료 선생님은 같이 네일아트 받으러 가자고, 드로잉카페 가자고, 미트파이 먹으러 가자고 나를 자주 불러내 주었다. 가족과 먹으라고 치킨을 선물해 주신 선생님, 케이크를 보내주시며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라고 말씀해 주신 선생님, 쉬면서 예뻐지라고 석류 콜라겐을 선물해 주신 선생님, 학교에서 제일 바쁘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면서 자긴 바쁘지 않다고 힘들면 전화하라고 말씀해 주신 선생님, 재량휴업일 종일 시간을 내어 데이트해 준 선생님, 학교 사람이 연락하면 내가 잘 쉬지 못할까 조심스러워하다 퇴근 후의 시간을 같이 보내준 선생님도 계셨다. 가족여행 가려고 했던 곳을 나랑 함께 가려고 여행 계획을 수정하기도 하고, 하루 코스 짜서 직접 운전하며 여행시켜 준 친구도 있었다. 내 친구의 어머님이 내 생각이 나셨더라며 농사지은 쌀 한 포대를 챙겨주시기도 했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한 친구는 내 성향에 딱 맞을 여행지를 추려서 알려주었다. 교장 선생님은 새벽에 내 꿈을 꾸시고는 나와 두 아이까지 밥을 사주시며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괜찮냐며 전화로, 문자로 연락해 주는 사람들도 많았으며, 병가 기간 중 있던 내 생일에는 역대 가장 많은 선물을 받았다. 그 밖에도 많은 분이 다양한 방법으로 수렁에 있는 나를 건져내주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을 돌보고 힘든 이야기를 듣는 것은 편안하거나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 한 사람 아프다고 이렇게까지 챙겨주는 사람들이 많다니, 인생을 헛살지 않은 것 같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나 또한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 아닐까. 사람들의 세심한 관심과 애정을 듬뿍 받으며, 눈물로 고마워함을 넘어 점차 나는 사랑받을 만한 인생을 잘 살아왔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블로그 체험단을 자주 하는 동료 선생님이 내가 블로그를 잘할 것 같다며 블로그 글쓰기를 권유했다. 블로그도 좋았지만 글에 집중하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더 관심이 생겼다. 브런치 작가에 합격해야만 글을 쓸 수 있었기에 합격에 도전하기로 했다. 세 시간 동안, 작년부터 써 왔던 글 몇 개를 모아 수정하고 앞으로의 글 계획 등을 짜서 지원했다. 다음날 바로 합격이라는 글을 보자마자 브런치에 글을 남겼다. 마음이 축축해서인지 평소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나무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나무며 자연물을 보면 시상이 떠올랐다. 그렇게 내 브런치에 식물에 관한 시를 몇 편 쓰게 되었다. 주로 밝은 글을 썼지만 처음 글을 쓰면서는 저녁 내내 펑펑 울었다. 그 시의 일부를 여기 소개해 본다.


  쏴아아아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나뭇잎이 찬란하게 보이는 건,

  빛나는 움직임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던 왜였을까.


  나뭇잎도 바람이 괜찮지만은 않았겠지.

  부르르 떨며 흔들리는 몸이 바닥에 떨어질까

  서로 부딪혀 아파도 참고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원한 소리, 햇빛에 반짝이는 아름다운 모습에

  내게 손 내밀어주는 것 같아 상쾌해진 마음

  나뭇잎에게 눈부시게 고마웠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나를 통해서도

  심연에 있는 그 누군가

  시원하게 웃고 시원하게 울었으면 좋겠다.

 

  지금 나의 보잘것없음이, 흐르는 눈물이

  시간이 흘러 누군가에게 찬란함과 아름다움으로

  작지만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꼭

  손 내밀어야지.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해서는 병원을 다시 골라야 했다. 평소 정신의학과에 다녀본 적이 없어서인지 병원 고르기도 쉽지 않았다. 집 근처의 병원은 꺼려졌다. 출산 전후로 여러 질환이 많았는지라 대학병원급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집에서 두 시간 거리의 대학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님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어렵게 잡은 진료의 기회를 잘 활용하여 현재 내 정신적 어려움을 최대한 자세하게 많이 말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초진이라 어린 시절의 성장배경까지 약 한 시간 동안 빼놓지 않고 상세히 이야기하려고 애썼다.

  “혹시 잠도 안 자고 무언가에 집중했던 적이 있나요?”

  저녁형 인간인 내게 밤은 황금시간이다. 낮이라면 10시간 동안 할 공부를 밤이면 2시간 만에 끝낼 수 있다. 공부나 취미, 각종 핵심적인 일은 밤에 이루어졌다. 다음날이 시험이거나 중요한 날이어서 졸려도 긴장해야 했다는 게 문제겠지만 말이다.

  “네, 그럼요.”

  “어떤 일에 빠져있었는지 이야기해 보시겠어요?”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이야기하려니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순간 내가 퍼즐 맞추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대학교 때 방학 때 일주일간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 퍼즐을 맞춘 적이 있어요.”

  “짧은 기간 내에 다른 사람이 이루기 힘든 성과를 이룬 적도 있지요?”

  이것은 벼락치기의 달인인 내 주특기인데. 대학교 때 기말 과제를 미루고 또 미루다가 전날 밤 10시에 시작하여 두 시간만 자고는 아침 9시 강의실 출발 직전에 인쇄 후 전속력으로 뛰어가 교수님께 극적으로 내는 그런 일 말이다. 시험공부도 항상 그런 식이었다.

  “네, 한 번 집중해서 많은 것을 해내고, 그러고 나면 힘들어서 퍼지기도 합니다.”

  “가장 최근에 집중한 일은 언제였나요?”

  내 장점에 대해 의사 선생님이 물어보아 주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목소리가 커졌다. 순간 집중력은 완전히 내 이야기가 아닌가.

  “얼마 전에 브런치 작가 통과하려고 블로그와 그간 쓴 글을 세 시간 동안 정리해서 한 번에 합격한 일이 있어요. 글을 자주 쓰다가 요 며칠은 안 썼네요.”

  이때까지도 나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서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하고, 생기 있는 표정으로 내 성취를 자랑하고 있었다.

  “가족 중에 감정 기복이 심한 분 있었나요?”

  “할머니요. 특이하고 힘든 성격이셔서 주변 사람을 매우 힘들게 합니다.”

  “친 부모님은 어떠셨나요?”

  “친아버지께서 술을 드시면 폭력적으로 변하시긴 했어요. 친어머니는 낙천적이고요.”

  “우울증은 아닌 것 같고, 환자분은 조울증일 가능성이 큽니다.”

  “조울증이요?”

  뉴스에서나 듣던 말을 들으니 멍해졌다.

  “우울증과 조울증 중 더 나은 건 없고, 양상이 다를 뿐입니다. 아마 10대 때 발병했을 거예요. 치료하지 않으면 기복은 더 심해지고 점점 힘든 상황까지 가게 됩니다. 병원에 잘 오셨어요. 그간 고생 많으셨을 겁니다.”

  그날 저녁, 그리고 이튿날까지도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간 살아왔던 이야기들이 길고 긴 필름처럼 세세하게 눈앞에 아른거렸다. 어려운 환경에서 평범하지 않은 유소년기를 보냈지만 정말 잘 자랐다는 말을 듣고는 했다. 주변 사람들은 지금의 내게서 불우한 과거를 찾기 어렵다며 놀랍다고들 했었다. 불과 한 달 전 심리상담가님은 비뚤어지지 않고 바르게 커 온 것이 대단하다며 이미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도 말씀해 주셨다. 그런 내가 조울증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아무리 찾아보고 생각해 보아도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조증 증세와 나는 양상이 다른 것 같다.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린 에피소드들은 같은 시기나 흐름도 아니고, 내 집중은 필요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닌 것 같다. 억울한 마음도 든다.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갖고 즐거운 일을 해왔던 것들,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취해 왔던 것들이 다 조증 증상이라는 것인가? 고등학생 시절 내 공부와 수능 성적표도, 사교육 없이 이루어낸 교대 입시와 내 직업도, 지금의 안정되고 평화로운 내 가정도? 내 삶이 한낱 증세들의 연속이었다는 것인가? 탄탄히 다져놓은 줄 알았던 인생이 폭풍에 종잇장 날아다니듯 공중 분해된 느낌이다. 불과 어제까지도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에, 가족의 따뜻함에 마음속 깊은 행복과 감사를 느끼지 않았던가. 우주 꼭대기에서 진흙탕으로 떨어져 처박힌 것 같다. 나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인생을 부정당한 기분이다. 나는 누구일까. 살아갈 힘도, 사는 의미도 없다.

  고민이랍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쉽사리 이야기하기 부담스러운 조울증이라는 세 글자를 상담 시간에 꺼내놓았다. 한참을 듣다 힘들었을 마음에 공감해 주시던 심리상담사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셨다.

  “제가 예전에 근무하던 학교 근처에 정말 좋으신 정신의학과 의사 선생님이 계셨어요. 상담 오는 학생들을 그 병원으로 많이 보내곤 했지요. 그런데 보내는 학생마다 족족 조울증이라고 했다는 거예요. 심지어 저 말고 다른 상담사 선생님께서 보낸 학생들도요. 그 후로는 학생들에게 미리 이야기했어요. 아마 병원에 가면 분명 조울증이라고 말할 거라고요.”

  ‘보내는 족족’이라니. 풉 웃음이 터졌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와 있었다. 짧은 순간에 그간의 혼란스러웠던 며칠이 까마득해지며 마음이 가벼워졌다.

  “성격장애의 여러 유형이 있는데, 모든 사람은 이 유형들의 특징을 조금씩은 다 가지고 있어요. 특징 하나도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민아 씨도 조울증 같은 특성은 갖고 있을 수 있는데, 진단을 받을 정도인지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정말 조울증이라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모를 수가 없어요.”

  무거운 진흙더미를 바짝 말려 툴툴 털어버리듯 조울증이라는 말도 가볍게 웃으며 할 수 있게 되다니. 집단상담 선생님도, 한의원 심리상담사님도, 이번에 ‘보내는 족족’을 말씀해 주신 심리상담사님도 공통으로 하시는 말씀은 정신의학과에 가면 어느 쪽으로든 진단을 내리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평소에 병원에 가지 않아 모를 뿐, 힘든 일이 있을 때 방문하면 무슨 진단이든 많이들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의 전문성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가볍게 들을 말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정밀 검사 결과 정말 조울증이라면 치료를 잘 받을 생각이다. 아무리 내가 조울증에 대해 검색을 한다고 해도 의사 선생님의 경험과 지식에 비하겠는가. 솔직히 조울증이 아니기를 마음 깊이 바라고 있지만 이제 내가 조울증이라고 하더라도 전처럼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진흙탕에서 빠져나와 조울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상상을 한다. 조울증은 조울증이고 내 삶은 내 삶이다. 내 인생은 증세가 아니며, 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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