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오르면
열 살이 되던 해 이사 온 집은 산꼭대기 위에 있는 배수지 관사였다. 배수지에 근무하게 된 삼촌을 따라서 온 가족이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보도블록이 깔린 완만한 산길을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공익근무요원이 신원을 확인하고 굳게 닫힌 문을 열어주었다. 자동차가 오갈 때에는 센서가 작동하는지 입구에서 애앵 애앵 사이렌 소리도 났다. 수돗물을 저장해 두는 곳이라 보안이 철저했던 것이지만 경찰이나 군인이 항상 지켜주는 것만 같은 우리 집이 거대한 성 같아 자부심이 샘솟았다. 집 안에는 뒤뜰과 통하는 문이 따로 하나 있었는데, 그 문을 열면 학교 운동장 절반만 하겠다 해도 믿을 만큼 넓고도 네모진 잔디밭이 땅 위 50cm쯤 높이로 펼쳐져 있었다.
잔디밭은 야외결혼식을 열어도 될 만큼 넓었다. 생각해 보니 실제로 야외결혼식을 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여동생들 부부, 이렇게 세 부부가 양복과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합동결혼식을 했었다. 곱게 꾸민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높고 넓은 잔디밭 멀리서부터 나란히 손을 잡고 걸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그런 결혼식을 리마인드 웨딩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나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애착이 짙지 않아서 그분들의 리마인드 웨딩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잊고 있었던, 완전히 잊을 뻔한 기억이 잔디밭을 생각하자 떠올랐다. 이 얼마나 큰 소득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