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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나무 Oct 27. 2023

산꼭대기 위의 집 9화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가출 이야기

  초등학교 3학년이던 그해 어느 날, 교실 뒤 사물함에 넣어둔 내 수첩이 사라졌다. 이상하게 여기던 차에 진아가 내 수첩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돈 주고 산 수첩이 아니라 교회에서 나누어 준 것이라 문구점에서 구하기는 어려운 수첩이었기에 저것은 내 것이 분명했다. 이거 내 수첩이라고 말하자 도리어 진아가 원래 자기 수첩이었다고 말하며 가져가 버렸다. 표정을 보니 분명 발뺌하는 것이었다. 진아가 수첩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화장실에 간 사이 수첩 안쪽을 보았다. ‘김진아’라는 글씨 밑으로는 연필로 내 이름을 눌러썼다 지운 자국이 남아있었다. 수첩을 뺏긴 것도 기분 나빴지만 진아가 도대체 내 수첩을 왜 훔쳐 갔는지, 그 수첩이 왜 가져가고 싶었을 물건이었을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야무지고 재미있는 친구라고만 생각했던 진아의 행동에 황당한 마음과 고민을 안고 집으로 왔다. 끙끙대다 그날 고민을 할머니께 털어놓은 것은 패착이었다. 다음날 할머니는 그년 집이 어디냐며 나를 앞세워 진아네 집에 찾아가 그 집을 한바탕 뒤집어 놓았다. 진아는 엉엉 울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수첩을 건넸고, 그날 진아는 진아 엄마에게 종아리를 맞았다고 한다. 물론 진아가 잘못하긴 했지만 그런 해결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수첩만 돌려받고 진아랑 앞으로도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이젠 내가 진아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평소 일을 크게 만들며 극단적으로 해결하는 할머니 때문에 부끄럽고 난감할 때가 많았다. 할머니는 나를 아끼기는커녕 매일 때리고 욕하기만 하면서, 내게 작은 일이라도 생기면 학교 전체를 뒤집고는 했다. 우리 반이건 남의 반이건 불쑥 들어가 아이들에게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하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할머니에게 그 어떠한 사적인 일도 전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소동을 부렸던 진아네 집은 교회 가는 길에 있었다. 산에서 내려와 학교를 지나고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에 들어서면 보이는 진아네 집, 거기서 3분만 더 걸어가면 교회였다. 나는 교회에 피아노를 치러 다녔다.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면 산길을 내려와 매일 교회로 향했다. 2학년 때 학원에서 처음 배운 피아노 실력이 급속도로 늘어 10살이던 그해에 어린이 예배 피아노 반주를 맡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피아노 학원에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내게 담임목사님은 교회 지하 예배당 열쇠를 주셨고, 덕분에 나는 매일같이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 다행히 학교에서 진아와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원래 교회에서 한 시간 정도 피아노를 치고 집으로 갔지만, 진아랑 친하게 지내면서는 교회에서 30분 정도 피아노를 치고 나서 진아네 집으로 쪼르르 찾아가 같이 놀자고 했다. 할머니께는 피아노를 치고 왔다고만 말했다. 피아노를 친 것도 일부 사실이기는 했거니와 할머니는 내가 친구네 집에 가는 것도, 친구가 우리 집에 오는 것도 싫어했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1학년 때 안산으로 이사 온 이래로 방과 후에 친구랑 놀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놀러 가 본 곳이 진아네 집이었다. 그랬으니 친구 집에서 노는 재미를 어찌 끊을 수 있었겠는가. 언젠가부터는 피아노 치러 간다고 나선 뒤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아예 진아네 집으로 향해버렸다. 함께 부루마블을 하고, 종이 인형에 옷을 요리조리 입혔다. 우리 집에는 없는, 사달라고 말하기는 꿈도 꿀 수 없는 놀잇감들이 진아네 집에는 많았다. 놀다 보면 한 시간이 금방이라 집에 가야만 했는데 날이 지날수록 점점 대담해져 두 시간을 머물고서는 오늘 피아노가 너무 재미있어서 많이 쳤다고 할머니께 뻥을 치기도 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더니, 집에 돌아왔는데 마당에서 할머니가 너 지금 어디 다녀왔냐고 묻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피아노를 치고 왔다고 둘러댄 순간 찰싹 물 한 바가지가 얼굴로 날아왔다. 할머니는 일그러진 얼굴로 마당에서 물 한 바가지를 뜨더니 내게 거세게 던지듯이 퍼부었다. “야, 이년아! 그년은 니 물건을 훔쳐 간 도둑년이여! 할머니한테 거짓말을 하고 매일같이 그 도둑년하고 붙어서 놀아? 이런 속 빠진 년!” 할머니가 지금은 기억하기도 싫은 더 험한 욕을 큰 소리로 퍼붓는 동안 내 마음에는 굳은 결심이 섰다. 이제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할머니랑 이 집에서 같이 못 있겠다고, 집을 영영 나가서 살겠다고 말이다.


  할머니가 마당에서 무언가 하는 동안 조용히 집 뒤편으로 돌아가 관사 입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방에서 기침하고 있을 할아버지도, 마당에 있는 할머니도 내 발걸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물에 젖은 생쥐 꼴로 배수지 출입구를 나오니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다시는 올라올 일이 없을, 마지막으로 발을 대고 있는 산 내리막길을 천천히 걸었다. 이상하리만치 덤덤하고 침착했다. 그간 겪었던 괴롭고 서러운 일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아주 천천히 산길을 내려가는 동안 나는 예전의 어린 내가 아닌 새로운 나라고 느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 달랐는데, 어제까지의 생각과 감정 그 위 어딘가 접해보지 못한 영역이 하나 열리며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른이 된 지금 떠올려 보자면 그즈음 사춘기가 와서 자의식과 생각이 좀 달라졌던 것 같다. 고작 열 살이었던 나는 스스로 내 의식의 변화를 알 만큼 예민하고 영민한 아이였다.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의 강압을, 집에서 매일 보면서도 못 본 척 태연해야 했던 식구들의 싸움을, 엄마 아빠는 서울로 일하러 갔다고 하라는 할머니의 말에 따라 숨겨야 했던 부모님의 부재를, 할아버지가 1년간 내 피아노학원에 들어간 돈의 총액을 대며 핀잔을 줄 때 받았던 모멸감을 예민한 내가 얼마나 힘들게 느꼈을지 어른이 되고서도 가늠하기가 어렵다.


  천천히 산을 거의 다 내려와서는 두 갈래 길을 보며 목적지를 생각해 보았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까. 교회로 갈 수는 없었다. 학교로 갈 수도 없고 친구 집으로 갈 수도 없었다. 어느 곳에 가더라도 할머니와 우리 집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간다면 어떨까. 조숙했던 나는 내가 다 알지도 못하는 위험한 일들이 도사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열 살인 내가 혼자 갈 곳은 없다는 것을 알고는 동네까지 내려온 발걸음을 멈추었다. 다시 집에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나는 이제 할머니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데, 집에 다시 가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는데 결론이 이것뿐이라니 탄식했다. 원치 않더라도, 이것만이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내 마음을 꺾어야 했다. 뒤를 돌아 다시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결심을 바꿨다. 참고 견디겠다고, 괴롭고 힘들더라도 나를 위해 버텨내겠다고 말이다. 앞으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두 번 다시 집을 나오는 일은 없다고 마음에 못을 박았다.


  집을 나선 뒤 30여 분 뒤 다시 돌아왔다. 집도 사람도 마당도 잔디밭도 그대로였다. 내 존재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원래 그냥 그대로 같았다. 마음을 느끼는 길이 다 끊어지고 내 감정이 사라졌다는 것은 나만 아는 비밀이었다. 내가 가출했었다는 것을, 가출할 만큼 마음이 힘들었다는 것을, 다시 돌아왔지만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조차 30년쯤 지난 지금까지도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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