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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딜라이트R Aug 15. 2023

뻔한 엔딩 2.

보름달이 뜨면 만나요

'여기 다닐 때 잘 보고 걸어요. 똥 밟아요!'
 라고~ 하시고는 바로 밟으셨다??!


후발대로 온 용, 권이(셀럽)와 그의 매니저인 세바스찬이 길에서 부시맨닥터가 소똥을 밟았다고 자지러지게 웃으며 나에게 이른다.


"ㅋㅋㅋㅋ의사들이 환자한테 몸에 안 좋은 거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선 저는 다 해. 그런 거지, 뭐ㅋㅋㅋ"

(부시맨닥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행기에서부터 용이 계속 하얀 알약 한 개씩 줬어. 무슨 알람 같아! 우리 일 시키려고!!!"(세바스찬)


"비타민, 비타민!! 아프면 안 되니까. 컨디션 잘 챙겨야죠~" (용)


"비타민 먹는 거 내일의 힘 땡겨쓰는거 아니야? 매일 먹어서 언제 갚지?ㅎㅎ"


따가운 햇살 아래 좁은 흙길을 계속 걸어가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용이는 엄중한 표정을 자주 짓는데 진짜 기분 좋을 때는 작은 눈이 더 작아지면서 입이 역삼각형 모양이 된다.(정삼각형으로 신기하게 생겼다.) 걷는 내내 입이 세모다. 유쾌한 부시맨닥터와 호탕한 세바스찬 덕분에 오디오가 끊이지 않는다.


대장 PD님이 옷을 갈아입었다. '적도대탐험'이라 프린팅 된 빛바랜 티셔츠. PD님의 전투복이다. 교복처럼 힘이 올라온다고 한다.


카메라가 돌며 촬영이 시작됐다.


카메라에 걸리지 않도록 PD님 등 뒤에서 화면을 관찰하며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들을 더블체크한다. 권이와 PD 님들이 촬영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도록 모든 방해요소를 제거하고 최고의 컨디션으로 촬영이 진행될 수 있도록 판을 펼쳐둔다. 우리 모두는 서로가 '모든 게 완벽해. 나만 잘하면 돼.'라 생각했고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힘을 다했다.


그중 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로바로.. 동네 아이들이 촬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것!! 어느 동네에서나 아이들이 몰린다. 신기하게 생긴 외지인들, 카메라, 자동차.. 아이들의 시선과 관심을 나에게 돌리기 위해 온몸을 던진다.


feat. 개를 체력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은 작은 사람 뿐이다. (이미지출처: 네이버/SNS에서 이슈가 됐던 이미지)


"얘들아, 이리 와~ 나랑 놀자~~!"

"이 게임 알아?? 따라 해봐~!"


<동대문을 열어라>, <푸른 하늘 은하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어렸을 때 했던 온갖 게임을 다 끄집어내어 아이들과 논다. 그리고 아이들의 노래와 놀이도 배워서 함께 한다.

서로 나를 팀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인기인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우쭐해진다.

6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내 옆자리를 꿰차고 왼 팔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래로 보이는 다른 여자아이가 아이의 자리를 빼앗는다. 아이가 울망하고 끼어든 아이를 쳐다보더니 반대쪽 팔로 가서 팔짱을 낀다. 두 아이는 짧게 말다툼을 하더니 각자가 잡은 팔이 자신의 자리인 것으로 합의를 본 것 같다.


'오, 네가 이 마을 일짱이구나.ㅎㅎ'


나의 촉은 왼팔을 차지한 아이가 이 마을의 일짱이라고 알려준다.

마을마다 그 마을을 주름잡는 아이가 1명씩 있다. 마을 아이들의 최고 권력자! 일짱과 친해지면, 나의 미션을 아주 수월하게 완료할 수 있다.

왼 팔을 흔들며 손짓하면 왼팔 담당 아이가 활짝 웃으며 뛰어와 왼팔에 안착한다.

오른팔을 흔들며 손짓하니 오른팔 담당 아이가 신나게 뛰어와 오른팔에 매달린다.

마을마다의 일짱을 파악하고 동네 모든 아이들과 친해졌다. 이제는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전의 놀이를 이어서 논다. 언어는 달라도 뜻이 통한다.

뭐가 필요하다고 한국말로 해도 아이들이 찰떡같이 알아들어 필요한 것을 착착 구해준다.

어떤 아이는 내가 들고 있는 노트와 같은 색깔의 노트와 펜을 구해와서 나를 흉내내기도 했다.


"정말 행복해 보인다."

"BR은 탁아소를 열어도 되겠어~"

"마을을 다 점령했네ㅋㅋ BR이 셀럽이다!ㅋㅋ"


행복하다. 아이들과 놀았을 뿐이었는데, 모두 친구가 되어주곤 더 큰 사랑을 쏟아준다.

세바스찬과 다른 스태프들도 함께 논다. 세바스찬이 무기를 꺼냈다. 아이들을 주려고 한국에서 가지고 온 스티커와 색종이들ㅎㅎ 인기폭발이다. 재미있다.


촬영 일정을 마치고 캠프로 돌아가는 길,


"우리 차 위에 올라가도 돼요??" (BR)

"그래요, 올라가요~!" (부시맨닥터)

"오예~!!" (애기 PD, 현지스태프 2명)

"주임님, 대리님! PD님도 올라와요!ㅎㅎㅎㅎ" (BR)

"피곤해요~ 그냥 갈래요" (팀원들)

"촬영 중에 위험요소가 있는 건 절대 안 하자는 원칙이 있어요.“(대장 PD)

“조심할게요오옹”

“에휴, 나도 모르겠다. 난 안 올라가요."(대장 PD)

애기 PD가 올라가고 싶어 대장 PD의 눈치를 살핀다.

"올라가도 돼ㅋ 올라가~!ㅋㅋㅋㅋ" (대장 PD)  

"오케이!!!!!!!" (BR, 애기 PD, 현지스태프 2명)


선선한 저녁바람, 집으로 돌아가는 소떼, 동그랗게 떠오르는 달님과 너울너울 지고 있는 해님,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이 너무 아름답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안전히 촬영을 마무리해 주셔서.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과 아이들을 느끼고 만날 수 있게 해 주심에.. 우리의 길을 계속 인도해 주세요. 늘 함께 해주세요.'


자동차 지붕 위 신난 4남매


캠프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부시맨닥터가 우리를 맞이하며 아직 일정이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랜턴과 치료장비, 수건을 가지고 캠프에 설치된 수돗가로 모였다.


'피자라'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치료를 위해 동네에서부터 우리가 있는 캠프까지 몇 시간 동안 걸어왔다고 한다.


온수가 나오지 않아서 차가운 물로 피고름이 고여있는 아이의 머리를 씻긴다.

아이가 고통에 소리치고 몸을 움직인다.

아프리카는 일교차가 크다. 해가 떨어진 밤은 새까맣고 쌀쌀하다.

피자라가 추워서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떤다.


한 명은 랜턴으로 아이를 비추고, 두 명은 아이와 수돗물 호수를 잡아준다.

나는 부시맨닥터의 필요를 도우며 샴푸를 들이붓거나 붕대와 반창고를 잘라 드렸다.

아이의 머리가 깨끗한 붕대로 감싸졌다.

추워하는 아이의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주고 권이가 입던 옷을 피자라에게 입혀주며 숙소로 돌려보냈다.

피자라의 치료는 우리가 떠날 때까지 매일밤 이루어졌다.


출장 기간이 끝나갈 무렵의 밤, 눈이 시리게 밝고 큰 보름달이 떴다.

달빛에 내 그림자가 크고 선명하게 생긴다. 이렇게 환한 달을 가깝게 본 적이 있을까?


세바스찬이 한국에서 소주를 챙겨 왔다고 밤에 은밀히 모이자고 한다.


'아.. 안되는데....뭐..이게 낭만이지..ㅎㅎ‘


천하장사 소시지, 김, 비행기에서 챙긴 땅콩, 초콜릿을 싸들고 캠프 옆 흙밭으로 만들어진 좁은 활주로 앞에 세바스찬, 용, 나 셋이 모였다.


"크.. 맛있다. 정말 수고 많았어요. 그런데 팀장님은 여기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 진짜 행복해 보여!"

"그래요? 저 아프리카 체질인가 봐요!ㅋㅋ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이 점점 올라와요. 용도 그렇죠?"

"아니.. 난 아니야. 왜 팀장님만 체력이 좋아질까? 잘 생각해 봐ㅋㅋㅋㅋ"

"아하..ㅋㅋㅋㅋㅋㅋ"


생각해보니 팀원들은 나를 서포트 하느라 점점 야위어가고 나는 점점 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ㅋㅋ


"내가 더 잘할게^^^^^"


한참을 이야기 하던 중 세바스찬이 말한다.


"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좋은 시나리오를 쓸 거야."

"오오~ 여기서 겪었던 일들로도 적어주세요!"

"그럴까?ㅋㅋㅋ 아프리카에 왔는데 소똥 밟는 부시맨 닥터"

"오지에서 권이와 사람들이 막 다니면서 아이들 만나고 함께 치료해 줘."

"그리고 몇 년이 지났어."

"비행기를 탔어.”

"기장이 쓰윽 뒤돌아봤는데!"

"알고 보니 피자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깔깔 거리며 끝말잇기 하듯이 셋이 돌아가며 뻔한 스토리를 이어 말한다.


'아, 3류 영화 같지만 오히려 좋아.'


행복하다. 상상만으로.

우연히 만난 피자라가 우리를 통해 새로운 삶을 선물 받고 비행기 조종사로 성장한다.

영화의 엔딩으로 따지면 뻔할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있을까. 있다면 그야말로 기적이겠지.


웃음이 그치고 셋이서 고요히 달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무슨 기도를 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왠지 모를 미어짐, 혹시 모를 기대감으로 간절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보름달이 뜨면 만나자. 한국에 돌아가도."

"좋아요~! 우리 모임 이름은 달무리 어때요?"

"달무리 좋다."

"진짜 무슨 일이 있어도 보름달 뜨면 만나는 거다?!"


남은 일정을 순조롭게 마무리했다.

일정이 마무리되어갈 때쯤이 되니 피자라가 치아를 보이며 환하게 웃는다.

이제 머리를 씻어도 아파하지 않는다.

열흘 가까이 씻겨주고 약을 바르고 깨끗한 붕대로 감아주었을 뿐인데, 아이가 엄청 밝아졌다. 상처부위도 눈에 띄게 나아졌다. 피고름이 멎었을 뿐 아니라 새살이 난다.

우리가 캠프를 떠나려 하니, 피자라의 엄마가 살아있는 닭 한 마리를 들고 오셨다.

부시맨닥터에게 몹시 고마웠는지, 표현할 수 있는 최선으로 마음을 나타내려 한다.

우리 모두 마음이 뭉클했다. 부시맨닥터는 감사한 마음만 받고 선물을 돌려보낸다.


마을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떠나려니 너무 서운하고 슬프다. ㅠㅠ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용이가 대포만 한 렌즈를 끼운 카메라를 들며,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모여보라 한다.


왼팔! 오른팔! 아이들이 재빠르게 와서 자리에 위치한다.

한 발 늦은 오른팔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자리를 뺏겨 끝자락에 섰다. 울 것 같은 얼굴이지만 함께 사진 찍으려 포즈를 취한다.


원, 투, 쓰리!!



얘들아, 함께 해주고 사랑해 줘서 고마워.

다음에 꼭 봤으면 좋겠다.

사랑하고 축복해. 건강하고 행복하길.

너희와 이 땅을 위해 기도할게.

많이 보고 싶을 거야.


떠나는 길,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이들이 뛰어서 쫓아온다.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 모두 안녕하자.


안녕,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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