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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딜라이트R Aug 07. 2023

뻔한 엔딩 1.

보름달이 뜨면 만나요

에티와 처음 SBS방송 준비를 했을 때 기관으로 모셨던 <부시맨닥터>.

그는 2005년도부터 현재까지 아프리카 섬나라에서 투병 중인 주민들을 직접 찾아가 수술과 치료를 해주고 현지 의료진의 의료역량을 키우기 위해 밤낮으로 헌신하는 엘리트 의사이자 선교사이고 교수자이며, 조직 경영자이다. 


섬나라 현지인들은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무당에게 "15년동안 이 돌을 머리에 이고 다녀라.", "나무 막대기를 머리에 꽂고 자라."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처방을 받는다. 

그 땅에는 평생 의사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부시맨닥터가 이들을 치료해주면 '용한 무당'정도로 불리어지기도 했다.


부시맨닥터는 질병으로 임신이 어려워 사람 취급받지 못했던 여성을 치료해주어 가정을 일구는데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종양으로 혀가 잔뜩 부풀어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던 아이를 한국으로 이송시켜 수술 받을 수 있게 도와 더 나은 삶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나는 한국에서 부시맨닥터의 사역을 위해 함께 기도했고, 가끔씩 그를 통해 한국에 이송되어 수술받아야 하는 아이의 수술 및 한국 체류비용을 위한 모금 또는 이동진료사업비 마련을 위한 모금을 했었다.


방송모금팀 팀장이 된 후 SBS와 함께 부시맨닥터의 이동진료 사업장 콘텐츠를 촬영할 기회가 생겼다. 


나는 방송국 PD님들과 선발대였다. 먼저 도착해서 방송사례를 찾아두면, 후발대가 셀럽을 데리고 현장에 와서 방송촬영을 진행하는 일정이다. 전기와 수도가 없는 오지로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전투식량 몇개와 한국에서 싸온 식량, 봉지커피, 고추장, 쌀, 반찬꺼리, 혹시나 만날 수 있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간단한 의약품 및 수술장비를 챙겨서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몇시간을 달렸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가는 길 중간에 숙박을 하루 했었다.


손으로 그린 마을지도

방문한 오지 마을에는 소이증(귀가 작거나 없이 태어남), 다지증(손가락, 발가락이 5개보다 많음), 합지증(손가락이나 발가락이 합쳐져 있음) 등을 가진 선천성 장애아동이 다수 태어났다. 그 이유는 산모의 엽산부족이었는데, 영양부족으로 인해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적어질 수 있도록 엽산을 지원해주자는 메시지를 방송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다.


마을 주민들은 자동차를 처음 봤다.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 온 동네 주민들이 자동차를 삥 둘러쌌다.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른 우리가 신기하고 반가웠는지, 밝은 얼굴로 환대해주었다.


"이 마을에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여섯개가 있는 아이가 있나요?"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이 집 저 집에 있다고 알려준다. 그들의 안내에 따라 집으로 찾아갔고,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가 놀러나간 집은 다음 날 다시 오겠노라 약속하고 다른 마을로 이동했다. 

가는 곳마다 장애아동들이 있었다. 


귀바퀴가 없는 아이, 구순구개열, 심한 척추측만증의 아동,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은 아이들...이 마을부터 저 마을까지, 촌장님들께 방송사례가 될 만한 아이들을 추천받아 꼼꼼히 살폈다.


그러던 중, '피자라'를 만났다. 

아이는 머리 끝 부터 발 끝까지 덮는 긴 천을 두루고 있었는데 고약한 냄새가 났다.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인데 유치원생처럼 보이는 체구이다.


부시맨닥터가 천을 벗겨보았다. 


가까이에 있던 스태프가 소리친다.


"윽...! 어떻게..!!"


부시맨닥터가 웃음끼 없는 목소리로 다급하게 외친다. 


"깨끗한 물..! 차에서 생수 좀 전부 가지고 와봐요." 


아이의 머리통이 짓이겨져 있었다. 파리가 아이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생수 몇 통을 쏟아 부으니 머리에 붙어 있는 피고름이 끊임없이 흙바닥에 흘러 내려간다.


손톱만큼.. 처음에는 그 정도 였다. 피자라가 부엌으로 들어와 놀다가 뒷통수에 불씨가 튀어서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동네에는 의사는 물론, 다친 곳에 바를 연고 하나 없어서 그대로 방치되었고 손톱만했던 상처는 어느새 뒷통수 전체를 덮어버린 것이었다. 

통증 때문에 바르게 누워 잘 수 없었고, 먹는 것도 힘들어 또래 아이만큼 자라지도 못했던 것이다. 


아이는 고통에 계속 소리쳤고, 울며불며 부시맨닥터의 손을 벗어나려 바등거렸다.


'이 아이가 방송에 나가면 모금사례로 탑이 될거야..!'


안타까운 마음 한 켠에.. 방송쟁이인 PD님과 나는 같은 마음이었는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번 방송 콘셉트랑 맞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금의 분량이라도 카메라에 담기로 했다.


아이가 방송에 나가지 않더라도 돕자! 꼭 살리자!


아이를 살리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았다. 

피자라를 만난 날에는 이동진료가 아닌, 방송사례를 찾기 위해 마을에 방문했어서 의료장비가 없었다.

부시맨닥터는 피자라의 엄마에게 우리가 지내는 거점캠프 지역을 알려주었다. 몇 일 지낼 수 있게 짐을 챙겨서 자녀를 데리고 오라, 우리가 여기에 있는 동안 매일 아이를 치료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피자라의 엄마에게 간단한 처방을 내려준다.


"아이의 상처를 매일 깨끗한 물로 씻어주세요."


피자라의 엄마와 거점지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 후 가장 먼저 방문했던 다지증 아이가 있는 마을에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의 눈초리가 싸늘하게 변해있었다.


"신이 우리 아이들에게 주신 선물을 외지에서 온 저 사람들이 빼앗아 가려고 해!"


우리 눈에 장애였던 여섯번째 손가락이, 그들에게는 신이 주신 축복이었다.

마을의 아이들을 꽁꽁 숨기고 우리에게 마을을 떠나라고 냉대한다.


오만했다.

정상과 이상은 우리사회의 통념이 만들어놓은 영역일 뿐인데, 다른 문화의 주민들에게 장애라 일방적으로 정의해서 원치 않는 지원을 하려 생각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주민들의 모습은 그냥 일상을 살아가는 삶일 뿐인데... 평안한 일상을 지내고 있는 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당신들이 받은 축복을 빼앗아가지 않을거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불안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우리를 냉대했던 마을을 떠나, 다른 마을에서 방송사례를 섭외해 조사하고, 동네 아이들과 놀던 중 멀리서  낯익은 차량 한대가 들어왔다. 


"어이~~!! 팀장~~~!!!!" 

"흐엉ㅠㅠㅠㅠㅠ용ㅠㅠㅠㅠㅠㅠ"  

(후발대다! 드디어 본촬영에 들어가는구나!!ㅠㅠㅠ)

 

절대 기억나지 않지만, 팀원이었던 용을 보고선 반가운 마음에 엉엉 울었다고..ㅎㅎ



해가 지고 있다.

셀럽이 도착했으니 내일부터 본촬영이다. 

잘해보자. 마을 주민들을 위해서.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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