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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딜라이트R Oct 03. 2023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 있을까

잃어버린 나의 쓸모

어깨부터 허리까지 동그란 모양의 하얀 소금띠가 생겼다. 

덥고 습해서 팔이 접히는 부위가 땀띠처럼 붉게 올라오고, 햇빛 알레르기까지 더해져 연신 긁는다.

코로 바람을 들이마시니 역한 냄새가 들어오고, 입으로 숨을 쉬려니 오물을 입 속에 넣는 기분이다. 


나는 지금 EBS 방송 제작진과 함께 동남아 개발도상국 쓰레기마을에 서 있다.


주변 지역 모든 쓰레기가 버려진 곳에 사람들이 모여 산다. 


마을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쓰레기 차가 들어오는 시간인가 보다. 

새로 온 쓰레기 더미를 뒤적거린다. 

먹을만한 것이 있는지, 살림에 보탤만한 물건이 있는지 세심하게 살핀다. 


"Yes!!!!"


한 아이가 보물을 발견한 모양이다. 사탕이다.

또래 아이들과 다 떨어진 슬리퍼를 질질 끌고 신나게 뛰어간다.

쫓아가보니 쓰레기 더미 위에 엉성히 만들어진 텐트 같은 곳이 집이다. 


쓰레기마을은 아프리카에서나, 동남아시아에서나... 2004년도나 오늘이나 한결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개발도상국이 쓰레기마을을 정리하지 않는 이유가 쓰레기 마을 '덕분에' 해외 원조를 받는데, 그것이 쓰레기마을을 정리하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쓰레기 마을


이보다 더 비참한 동네가 있을까?


있더라. 


다음으로 찾은 곳은 공동묘지 마을이었다.

공동묘지 마을은 쓰레기마을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산다고 한다.

묘지 주인 허락 없이 몰래 살기도 하고, 묘지 주인이 알면서도 눈을 감아주는 경우도 있다. 

어떤 주민은 묘지 주인에게 묘지를 청소해 준다는 명분으로 묘지에 얹혀살고 있다.


나는 그곳 마을 일짱과 거의 절친이 되었고, 마을 아이들과 모두 친해졌었다.

여자아이들에게 한국의 '쎄쎄쎄'를 전수하고, 아이들의 놀이도 배워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해맑은 표정으로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말한다.


"오빠앙♥"

"킥킥"  

"와하하하"


한국말을 들은 친구들이 키득거린다.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들은 게 한국어가 맞는가 싶었다.


"뭐라고?" 

"오빠앙♥"

"ㅋㅋㅋㅋㅋㅋ"


경악스러웠다.

11살~12살 되는 여자아이가 누구에게 이런 말을 배웠을까?

분명, 이 어감은 여동생이 오빠를 부르는 표현이 절대 아니었다. 

성인여성이 남성을 꼬시는 느낌이었다. 

(저 말끝에 하트. 빌어먹을 하트가 보였다..ㅂㄷㅂㄷ...)


"이 말 누구한테 배웠어? 이런 표현은 아주 나쁜 표현이야. 네가 쓰면 안 되는 거야. 앞으로 절대 하지마!"

"네.. 알겠어요..(어리둥절)"


너무 화가 났었다. 

어린아이에게 이런 말을 가르쳐 준 사람에게도, 이런 표현을 배운 아이에게도, 어른으로서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수준밖에 안 되는 나에게도...


공동묘지 마을


공동묘지 마을에 8남매 가정이 있었다.

막내가 극심한 피부병으로 온몸의 피부가 벗겨졌는데, 병원비 감당이 안되어 병원에 갈 생각을 못하고 있다.

두피까지 심각하게 벗겨져 우리가 차로 병원에 데려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엄마는 심한 차멀미로 구토를 한다.

공동묘지를 나가면 바로 차도인데, 이들은 단 한 번도 차를 타보지 못했다. 

8남매 중 한 아이는 몇 달 전부터 배가 계속 불러온다고 한다. 

현지 프로젝트 매니저는 아마도 임신한 것 같다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말한다. 

식구들 중 한 아이는 마을 건너편 반찬가게에서 하루종일 아르바이트를 한다. 

하루 일 한 삯으로 가게에서 팔고 남은 반찬을 싸가지고 와서 가족들의 끼니를 챙긴다.


촬영 막바지, 그날도 아르바이트를 마친 아이는 남은 반찬을 얇은 비닐봉지에 싸가지고 해맑은 표정으로 차도를 건너서 뛰어왔다. 아이들이 맨발로 묘지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논다. 엄마들 얼굴에는 웃음끼가 없다. 


아... 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NGO들이 모금을 하고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지. 

그런데 그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이런 환경 속 아이들 중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것이고, 

그 아이들 중에 어느 아이들이 정계로 나갈 것이며, 

또 그 아이들 중 누가 바른 정치를 펼쳐서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정말 가능한 일일까? 그런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온다면 언제나 올까? 

내 눈앞에 있는 아이들의 삶은 변할 수 있을까? 

희망, 소망... 이런 것들은 그냥 자기 위로나 스스로를 기만하는 건 아닐까?


내가 하는 모든 행위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 같구나. 

너무 쓸모없는 것 같다.

 

아프리카에서는 못 느꼈던 상대적 박탈감과 상대적 빈곤감.


사회를 바꿔보겠다고, 세상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말하고 행동했던 내가 너무 초라하고 작게 느껴졌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다는 말이 이런 감정에서 나온 말이었겠다 싶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해요? 

당장 눈앞에 사람들이 이 모양으로 사는데. 왜 보고만 계시나요?

교육? 선교? 그런 게 뭐가 중요해요? 왜 이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시나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의 무능함은 하나님을 향한 불만으로 바뀌었고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 세 달 가까이 하나님께 따져 물었더니, 


우선 사는 게 먼저라 하신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


무슨 말이지요? 난 잘 모르겠어요. 

나는 이제 무얼 해야 하나요? 

어떤 걸 할 수 있어요?


갈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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